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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Mar 09. 2021

폭력의 전이

넷플릭스 영화 <4등> 리뷰

        


마스크 좀 벗고 싶다. 


답답해 죽겠다. 숨쉬기가 불편해서 마스크를 여러 가지 알아봤다. 여러 가지 사봤다. 그런데 완전히 맘에 드는 게 없다. 그래도 써야 한다. 5살 된 딸이 불쌍하다. 봄 내음을 맡아야 하는 3월. 마스크 벗고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이 시기. 작년 언젠가 딸이 내게 홀로 책을 읽다가 물어봤다. “아빠 왜? 시골쥐 하고 서울쥐는 왜 마스크 안 껴?”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니, 당연히 동화 속 서울쥐와 시골쥐도 그렇게 해야 한다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 세상을 변화시켜버린 지독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2020년과 2021년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좀처럼 백신이 나오지 못했던 이유가 뭘까? 은평 성모병원 감염내과 최정현 교수는 말한다.


"원래도 오래 걸리는 백신 제작과정인데 코로나바이러스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백신 발명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헬스조선 2020.03.35) 



다행히 이 인터뷰가 있고 거의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백신을 접종하고 있고, 일반인인 나로서는 가을 정도 되면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집단면역 시기를 11월 정도로 보고 있다. 11월이 정말 기다려진다. 차가운 공기라도 마스크 없이 다니며 원 없이 맡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11월이 돼도, 내년 11월이 되어도 집단 면역이 생기지 않을 것이 분명한 바이러스가 있다. 



바로 폭력이라는 바이러스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존재했었다.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욕구를 이루고,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인간은 폭력을 자행했다. 이 유구한 역사는 2021년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만연해 있다. 유토피아를 그린 사람들은 인간의 폭력이 축소되거나 해결되리라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하고,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게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로 시청한 <영화 4등>은 인간의 폭력이 타자에게 얼마나 쉽고, 변화무쌍하게 전이되는지 다루고 있다. 주인공 광수는 실력이 있는 국가대표 수영선수다. 그러나 도박을 하느라 소집에 늦게 된 광수를 감독은 몽둥이로 가차 없이 때립니다. 결국 광수는 선수촌을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며 주인 1공 준호에게 집중한다. 준호는 수영 시합에 나갈 때마다 4등을 하는 초등학생이다. 이 모습에 분노 가득한 엄마 정애는 수소문 끝에 메달을 따게 만든다는 코치 광수를 만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어렵사리 시작된 광수의 코칭은 거친 매질로 시작된다.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수영복만 입은 아이를 때리는 모습은 참혹하기 하다. 그는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준호에게 전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광수가 저지르는 폭력의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어릴 적 구두쇠였던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기 위해 출항하는 아버지의 배를 따라 수영을 했고, 아들이 죽기 직전에 던 저준 돈을 이야기하며 무용담처럼 전한 간절함. 그러나 거기에는 한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할 자연스러운 사랑이 아닌, 죽을힘을 다해야 겨우 살아갈 돈을 받을 수 있었던 돈의 폭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그런 돈에 대한 집착은 도박을 낳았고, 그로 선수촌의 구타는 자연스레 광수 속에 폭력 바이러스가 넘치게 만들었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준호의 엄마는 이 같은 광수의 폭력을 눈감는다. 그것은 오직 1등을 향한 집착, 그리고 그것이 준호의 인생을 보장할 것이라는 맹신 때문이다. 계속되는 쿠타 속에 연습한 준호는 2등까지 오르지만, 광수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또다시 폭력을 자행한다. 결국 준호의 삶에는 폭력이 드리워지고 연습 때 맞은 것처럼 어린 동생에게 폭력을 가한다. 영화는 경쟁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향한 수단. 그것이 폭력이라 할지라도 용인하고 묵인하는 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어린아이의 인격을 다루고 있다.     



 한참을 맞으며 연습했던 준호. 아닌 진지하게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정말.. 내가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어? 내가 1등만 하면 상관없어?” 
영화 <4등>에서 엄마를 향한 준호의 대사

거기에 엄마는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는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야 난 솔직히 준호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영화 <4등>에서 남편하게 말하는 정애.



정애의 모습은 폭력을 통해서라도 1등을 만들어야 하는 이 세상의 부모들의 야만성에 경종을 울린다. 영화는 결국 준호가 그 누구의 폭력도 아닌 자신 스스로 마음껏 수영할 때 1등이 된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잔잔한 여운은 나 역시 넘버원을 향한 욕망으로 누군가를 향해 폭력을 자행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 보게 만든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인간은 폭력이 아닌 주체적 자유성을 통해서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임을 깨달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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