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 리뷰
나지막한 목소리에 다듬어지지 않은 돌덩이 같은 남자가 나온다. 굴곡진 얼굴은 그가 살아온 시간들을 나타낸다. 군살 하나 없는 마른 체형. 날 선 눈빛. 조직 생활을 하는 태구(엄태구)그러나 그를 완전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이가 있다. 바로 사랑하는 누나의 딸. 이 세상 누구라도 어린 피붙이 앞에서는 무거운 가면을 벗게 만든다. 그러나 사랑하는 누나와 조카는 비 오는 어느 날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그 죽음을 상대 조직의 소행으로 알고, 태구는 결국 복수의 밤을 보낸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제주도로 도피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낙원의 밤’은 선이 굵은 배우들의 묵직한 연기들이 눈이 가는 작품이다. 보는 내내 어두운 색조의 느낌 속에 중반 이후 마 이사(차승원)의 등장은 스토리 속의 환기를 담당한다. 존재 자체로 아우라가 가득한 마 이사의 복수를 향한 잔인함. 그것보다 더욱 악랄하며 인간을 향한 환멸이 느껴지게 만드는 양 사장(박호산)의 태도. 그 속에서 관객은 최악과 차악의 줄타기 속에 오히려 마 이사의 모습에 오히려 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 유일하게 밝은 톤으로 등장하는 곳 제주도. 낙원으로 그려지는 그곳에서 태구가 만난 여인 재연(전여빈)은 몽환적이며 신비한 낙원 제주도를 닮았다. 잠깐이지만 그들에게 진행되는 서로를 향한 연민과 동정은 사랑으로 자라가게 된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재연에게 태구의 등장과 삼촌의 죽음은 마이사와 양 사장을 향한 또 다른 복수를 증폭시키고, 결국 무자비한 총질로 그들을 죽이고, 자신 역시 제주도의 푸른 물결에 발목을 담그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복수에 관한 많은 영화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그 영화에 열광한다. 그러나 복수를 그리는 영화의 공통점은 결국 그 복수의 과정속에서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자라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영화 속 계속되는 복수 속에서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고, 복수는 결국 공멸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핏빛이 서려 있는 복수는 결국 낙원 조차 밤으로 만들어 버리고, 빛이 없는 밤거리 속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읽어버리게 만든다. 어둠은 나도 상대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낙원이라는 공간조차도 무기력하게 만든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밤. 우리가 살아가는 밤도 마찬가지다. 온갖 화려한 네온사인과 수많은 정보로 뒤덮인 이 시대 밤은 내 존재와 내가 향해야 할 길을 혼미케 만든다. 그리고 가까이에 존재하는 낙원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하루를 가치 없고, 훗날을 위한 시간인 것처럼 만든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애매한 미래를 향한 불안만 커지고, 결국 피로감과 우울함으로 인해 무기력해진다. 지금 나를 밤에 가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 가득한 복수심?, 절망 속의 낮은 자존감? 용서하지 못하는 분노? 그러나 명심할 것이 있다. 그것들이 내게 가득하게 존재하는 한 낙원은 여전히 밤일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