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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May 28. 2021

"생각 or 감정" 당신의 선택은?

손원평 소설 <아몬드> 리뷰


   


- 당신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

생각 없이 사는 인생 or 감정 없이 사는 인생                                                                       

이 선택은 앞으로 십 년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이라는 단어와 감정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유하며 이 같은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다. 그럼 나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우선적으로 생각부터 택하지 않을까? 생각이라는 것은 인간의 존재적 특징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 데카르트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른 가장 커다란 점은 바로 생각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각하는 힘으로 인해 인류는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생각'을 택한 내게  우울함이 밀물처럼 다가왔다. 앞으로 10년간 아무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인생. 


그것은 어린이집에서 정성스레 색깔을 칠해 아빠에게 주려고 가져왔다는 하늘이의 자그마한 편지에도 기쁨이 느껴지지 않으며, 아버님 눈가에 짙은 주름이 깊게 드러설 때도 슬픔이나 죄송함이 없을 것이다.  비 오는 날의 물기를 가득 머금은 풀잎 가득한 수영강의 향기에도 여유로운 마음이 없을 것이며, 일과를 마치고 재즈를 곁들여 주광 등 아래 아내와의 차 한잔 속에서도 사랑이란 감정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까?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끄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이성이 인간을 만들어낸다고 하면, 감정은 인간을 이끌어 간다.

 - 루소. 


 결국 감정 없이 사는 인생을 선택한 내게 툭하고 찾아온 책은 바로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다. 우리 머릿속에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가 남들보다 작아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도 못하는 주인공 윤재. '감정 표현 불능증'. 이 희귀한 병명이 주인공 윤재에게 내려진 진단명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삶의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바로 ‘관계’가 아닐까? 

손원평 작가는 <아몬드>를 통해 타인을  너무 쉽게 재단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은 누군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상대의 호감을 통해 관계가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공감을 통해 더욱 가까워지고, 친밀감을 통해 사랑하는 사이로 나아간다. 이렇듯 감정은 타인과 나, 공동체와 나와 관계를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표현하기 어렵다면 내게 주어진 가장 커다란 것들에 대한 감정도 잃게 된다. 그 가치가 아무렇지 않게 된다.


  엄마와 할머니가 눈앞에서 살해당했을 때 어땠는지 묻는 친구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윤재. 슬프다, 힘들다. 어렵다. 외롭다. 그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윤재는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생각한다. 엄마가 운영하던 서점도 계속 열어놓고, 그를 돕겠다는 손길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생각과 감정 둘 다 존재하는 사람들일 바라보는 비정상이라는 시선 속에서도 그는 잠잠하게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그를 비정상으로 여기지만 윤재는 이에 별다른 반응 없이 자신의 삶을 구축해 간다. 


이런 윤재에게 두 명의 사람이 찾아온다. 바로 곤이와 이도라. 둘에게는 동일한 특징이 있다. 동갑이면서, 평범하지 않다는 것. 둘 다 생각보다는 감정이 앞선다는 것. 곤이는 윤재에게 아픔, 외로움, 슬픔, 연민 등의 감정을, 그리고 이도라는 기쁨, 설렘, 사랑 감정들을 일깨워 준다. 세상은 곤이를 통해 알게된 감정을 나쁜 감정 이도라를 통해배운 감정은 좋은 감정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나눌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감정이든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또한 처음으로 느껴지는 윤재에게 두사람은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우리는 너무 쉽게 감정들을 흑과 백으로 나눈다. 그리고 어두운 감정에 사로잡힘을 두려워하고, 기쁜 감정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역시 불안해한다. 감정들을 생각 속에 넣어 분류하고, 분별하며, 절제하고, 차단한다. 그러나 때로 생각을 넘어서는 감정은 인간의 삶을 보다 인간답고, 풍성하며, 누릴 수 있게 만든다. 생각이라는 단어 선택하여 감정이라는 단어를 놓친 인생. 그 인생은 그려볼수록 어려운 삶의 연속이다. 모든 것을 4B연필로 그려 흑과 백, 선과 점으로만 이루어진 삶. 그 삶은 <아몬드>의 윤재가 경험해야 했던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 되어버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 vs 감정 둘 중 하나를 택히여 십 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인간됨을 상실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 주위에는 생각이나 감정을 저버리고 그저 자신이 바라보고, 추구하는 것에 빠져 살아가는 인생들이 많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너무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각과 감정이라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고유한 선물을 지금 내게 주어진 이곳에서, 오늘 하루 누리며 살아간다면, 4B연필을 통해 흑백으로 그려진 이 세상에 아름다운 색이 곳곳에 저며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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