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 아래_봄

열두 번째 이야기

by 박상민

아빠가 되니 줄어든다. 머리카락 개수가 줄어든다. 외우던 전화번호가 줄어든다. 바지 허리가 줄어든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게 줄어든 게 있다. 봄을 향한 마음. 봄 타는 게 급격히 줄어들었다. 결혼 후 조금씩 무덤덤 해졌다. 아빠가 되니 노래 부른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원래 봄을 잘 탔다. 봄을 기다리던 자였다. 그러나 정신없이 살다 보니 지나가고 있다. 봄. 봄을 탄다는 말은 합성어다. 먼저는 봄이라는 단어이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의미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봄의 의미는 새로움과 따스함과 밝음이 아닐까? 이렇게 우리끼리만 봄을 이야기하면 서운해할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사계의 작곡가 “비발디”. 비발디는 특유의 감성으로 사계절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그중 제일은 봄의 1악장이다. 경쾌한 합주가 울려 퍼진다. 이후 세 대의 바이올린이 새소리처럼 노래한다.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생명의 활기가 넘쳐난다. 겨우내 얼었던 시냇물이 녹는 소리가 들린다. 싹이 터지는 소리와 흐르는 물소리가 하모니를 이룬다. 비발디가 표현한 봄. 그 봄에는 생명이라는 단어가 숨겨져 있다.

두 번째 단어는 ‘타다’라는 동사이다. 한글의 묘미는 바로 동사이다. 그 가운데 동사 ‘타다’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재미있다. 흔하게 사용하는 의미는 ‘「…에,… 을」 탈것이나 짐승의 등 따위에 몸을 얹다.’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 타다.’가 있다. 그 외에 산을 오르거나 그것을 따라 지나가다. 어떤 조건이나 시간, 기회 등을 이용할 때도 ‘타다’를 쓴다. ‘바람이나 물결, 전파 따위에 실려 퍼지다.’라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다양한 의미 가운데 한글로 사용되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계절을 타다.’이다. 이러한 ‘타다’의 ‘의미는 변화에 예민하여 반응하다.’ 정도로 정의 내린다.


그렇다. 나는 봄을 탔다. 생기 가득하고, 활력이 넘치는 봄을 탔다. 만물이 소생하고, 새로운 출발의 봄을 타며, 봄의 향연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봄에 예민했던 내가 왜 봄이 오는지 몰랐을까? 왜일까? 그 이유를 생각해 골똘히 생각했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데, 연둣빛 잔디가 반가웠다. 한참을 바라봤다. 시간이 꽤 흘러갔다. 그 시간이 가져다준 것은 여유였다. 그리고 이미 내 마음에 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늘이의 만남부터였다. 새 생명. 우리에게 나의 자녀가 바로 봄이었다.


봄 타는 것을 미련하다 생각했던 나. 봄을 타는 것을 두려워하던 나, 봄 타는 것을 낭비로 여기던 나. 세상의 속도에 버거워하며 힘겨워하던 나. 그 가운데 어느덧 봄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몰랐다. 그렇게 나에게 찾아온 봄. 그 봄을 맞이할 겨를이 없던 것이다. 그래. 이제 봄을 타자. 아빠라는 이름 아래, 육아라는 단어 아래 만들어진 얼어붙은 마음과 생각. 그것들을 깨버리자. 그 부담을 내려놓자. 나에게 찾아온 생명. 그로 인해 생긴 반가운 봄. 생명이 가져다주는 봄. 그래 봄을 타자. 봄을 타고, 봄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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