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번째 이야기
“째성함이다.”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뭐라고?” 몹시 떠는 가냘픈 목소리.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다. 벌게진 얼굴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뭇잎보다 작은 손으로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한 번 더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죄 성함이다.” 잘못 들은 줄 알았던 그 말. 천천히 귀에 들린 그 말이 가슴을 내리쳤다. 쓰라렸다. 나의 자녀에게 처음 듣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에 나는 너무 놀라서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내 감정은 답답함과 짜증, 분노와 지친 마음이 가득했다. 어린이집 하교 후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마트를 갔다.
사실 근처 대형마트는 우리가 애용하는 놀이터다. 이곳에 갈 때마다 주의해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마트 일층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 언제부터였을까 하늘이는 이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감자튀김을 사달라고 말한다. 마트의 수많은 식품과 장난감에는 크게 요동하지 않는 하늘이가 이곳만큼은 경보기가 달린 듯이 “감자튀김” 하며 계속해서 말한다. 최근에는 감자튀김을 사준적이 없어 한번 사줘야겠다는 마음에 감자튀김을 시켰다. 어느새 감자튀김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온갖 이쁜 표정을 지어가며 감자튀김을 기쁨으로 흡입하는 하늘이를 보며 이렇게 빨리 자라고 있는 것이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다. 그렇게 감자튀김까지 넉넉하게 먹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초보 아빠의 어설픈 예측으로는 두 가지였다. 하나, 졸리다. 최근에 졸리면 떼를 부리고 바닥에 눕고 계속 울었던 적이 있다. 둘, 물이 먹고 싶다. 감자튀김을 사주면서 아무 음료수도 먹이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근처 정수기에서 물이라도 가져다줬어야 했는데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놓쳤다.
어쨌든 하늘이가 울기 시작했다. 터져버린 것이다. 바닥에 주저앉더니 계속 두 가지 말만 반복한다. “안가” ,“안 할래.” 무엇을 안 할 것인지, 어디에 안 갈 것인지 알려주지 않고, 그저 소리를 지르며 울어댄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처음에는 하늘이를 어떻게 달래줄까? 하는 마음에 다정하게 접근했지만 화만 더 키웠다. 이후 나 역시 감정이 상하게 된다.
안아주려 해도 좌우 앞뒤로 몸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내려놓으면 길 한복판에서 누워서 온 사방으로 손을 휘젓는다. 답답함을 넘어서 짜증이 날 무렵 생각난 방법은 “맴매”였다. 한 번도 밖에서 “맴매”를 들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하늘이를 맴매를 가지고 제대로 때려 본적 도 없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무엇이라도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곁에 있던 짧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하늘이를 잡고 말했다.
“하늘아 여기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눈에는 힘이 들어갔다. 화를 내는데 화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늘이가 마구 울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제성 함이다. 제성 함이다.”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분명 하늘이가 나를 두려워하는 게 느껴졌다. 전혀 여과 없는 분노가 3살밖에 안된,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30개월 된 여자 아이에게 쏟아진 것이다. 그런 후회와 함께 쉴 새 없는 감정의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태풍 속에 키보다 훨씬 높은 파도들이 범람하는 파 다처 럼 미안함과 죄책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감정이 비슷하게 느낀 그때가 생각났다. 스무 살. 낯설고 어려운 숙제에 모든 삶이 멈춰버렸다. “아버지를 용서하세요.” 상담학과의 특강 주제 “아버지” 당시 강사의 강의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모든 관계에 영향을 가져다줍니다.’ 그가 펼치는 논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2시간의 강의는 마치 20분도 안 되는 것처럼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의 멘트. “숙제를 내드리겠습니다. 이번 주 아버지를 용서하고 안아드리세요.” 손뼉 치며 좋은 강의였다고 생각하고 손뼉 치고 날려 보내려는 순간 온몸이 경직되었다.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아버지를 안아 드리라고? 몹시 어려운 과제를 남기고 그는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후폭풍이 일어났다. 내 머릿속은 아버지에 대한 온갖 생각과 추억들,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사춘기를 넘어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어색한 존재로 변하고 계셨다. 중학교 시절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부모님의 관계는 틀어지셨고 그 사이에 자연스레 아버지의 존재는 다가가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어려운 마음은 점점 화석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다가가 용서를 구하라는 숙제는 내게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때가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스무 살의 늦봄 어느 날. 밤 11시 즈음. 언제나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던 나는 아버지께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말했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요.” 놀라신 아버지께서 천천히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입을 열 때 나는 이미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빠 죄송해요. 그리고 아빠를 용서해요.” 두려움. 공포. 답답함. 죄송함. 엉망진창으로 섞여버린 감정 속에 나는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미 수업에서 교수님의 말이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나의 뇌에 그렸던 그 말을 뱉어버렸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하실 때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셨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눈물. 그 이후로도 아직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나도 미안하다. 아빠도 힘들었단다.”
살아오며 늘 말을 아끼셨던 아버지께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으셨는지 말씀하셨다. 아버지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들이었다. 아버지도 누군가에게는 멋진 오빠였고,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남편이었다. 그리고 친구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흔들림 없는 존재였고,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은 내게 아주 특별했다. 그런 아버지가 내 앞에서 힘드시다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눈에서 역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그 순간 그분께서는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제가 기도해드려도 될까요?” 아버지는 눈물을 닦으시며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 손을 잡고 기도했다. 어떤 기도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기도가 마친 뒤 둘 다 한동안 눈물을 닦았던 것. 그리고 아버지께서 하신 약속만 기억난다.
“아빠. 이번 주부터 교회 나가야겠다.” 그리고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던 아버지는 지금 나의 가장 소중한 중보기도자이시며, 이후 아버지는 내게 좋은 형이자 친구가 되셨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나의 기도는 이후 계속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바뀌었다. 군에 입대할 때,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하늘이를 출산하고서, 식사의 자리에서도 이제 아버지께서 종종 먼저 기도 하신다.
그날.
떨리는 목소리로 무릎을 꿇고 마음을 다해서 전한 진심. “죄송합니다.” 그 한 마디는 내가 하늘이에게 처음 들었던 “죄송합니다.”의 속상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아픔과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한마디 하나가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 가운데 회복의 물고를 트이게 했다. 마치 하늘이와 나와의 관계처럼.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처럼.
“죄송합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