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홀로서기
“어허~ 안돼” 하늘이가 물건을 잡고 서기 시작했다. 의자 없이 앉기만을 바랬던 게 어제 같은데 어느덧 300일이 지났다. 이제는 보고 있지 않으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빙판 위의 김연아 선수처럼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기어 다닌다. 때로는 박태환 선수처럼 접형의 자세로 거침없이 사방을 돌아다닌다. 그 모습이 어찌나 늠름하고, 빠른지 가끔 보면 고구려의 영토를 넓히던 광개토 대왕의 눈빛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배가 고프면 사정없이 울어버린다. 그렇게 자란 하늘이. 요즘 홀로 서는 연습을 한다. 그런데 넘어진다. 곧잘 주저앉는다. 수십 번. 수백 번을 넘어진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글을 보면 한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제대로 걷기까지 총 2000번을 넘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홀로 서고 걷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하늘이만 그토록 홀로 서고 걷고 싶은 게 아니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당당하게 19금 영화를 얼마나 보고 싶던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대통령 선거가 얼마나 하고 싶던지, 운전을 하면서 좋아하는 노래 들으며 어찌나 달리고 싶던지. 어른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입이 닳도록 하던 학창 시절. 부모님을 떠나서 살아간다는 기대와 환상. 내가 번 돈으로 포장마차에서 마음껏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 그날을 상상했었다. 홀로 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내가 살아갈 것을 혼자 벌고, 혼자 쓰며,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게 만만치 않다. 어느 하나 녹록한 게 없다.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카드회사의 전화상담원. 하루에 쉬는 시간 10분. 점심시간 40분. 콜이 많으면 30분. 그 외에 시간에는 항상 대기를 해야 한다. 일정량의 전화를 받지 못하면 언제나 박살이 났다. 처음 듣는 목소리의 사람들. 이 땅에 돈이 없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지 그제야 조심스럽게 배웠던 그 시절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 엄청난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한 여직원. 그 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다가 도저히 참지 못해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해 부팀장까지 올랐던 그녀. 결국 쏟아지는 질책과 찢어지는 감정 속에 버티지 못하고 사직서를 건네던 그날, 어느 하나 위로해줄 힘들조차 없는 그 시간, 아쉽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용기를 축하해 주며, 나 역시 사직서를 만지작거리지만 결국 포기하던 하루하루.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 내려 이를 악물고, 목에 핏대 세우며 버틸 때 가장 간절한 것은 누군가의 한마디였다. 인사치레라도, 진심이 없고, 던지는 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힘내, 포기하지 마.” 상투적인 멘트라도 누군가가 그리웠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끝에 배웠던 커다란 배움. 이 세상에서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다. 이 같은 결론 속에 나약하다 손가락질하며, 비판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란 홀로 설 수 없다.” 이 깨달음을 귀하게 여기셨는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교회로 이끄셨다. 그때 만난 만남들. 사회에서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주 5일 모두 야근하며 겨우 버티던 부부, 법률회사에서 하루에 4시간씩 자다가 결국 그만두고 쓰러지기 직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부부, 한 명은 대학원생으로 또한 명은 콜센터 직원으로 살아가던 우리 부부까지. 그렇게 우리는 모였고, 그 모임 속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러져 있던 우리 들은 서로를 세워주기 시작했다. 삶이란 혼자 사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그것을 우리는 느꼈다. 누구나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하나님을 통해 함께 사는 삶을 경험하면 전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 시절 만나던 그 가정들도 그랬다. 서로의 삶을 오픈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서로의 마음들을 치유케 하셨다. 더 나아가 함께라는 이름의 거대함을 경험케 하셨다. 누군가가 서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끌어줘야 하고, 잡아줘야 하며, 일으켜 세우는 존재가 있어야 함을 경험했다. 그 경험이 내 삶에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다.
하늘이는 오늘도 넘어졌다. 자꾸자꾸 넘어진다. 그런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씩씩하다. 그러나 하늘이가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그저 누워 있으며 울어 재낄 때 가 있다. 그것은 혼자가 되었을 때 그렇다. 엄마도, 아빠도 없을 때 그렇다. 아무도 없으면 하늘이는 계속 울어댄다. 마치 죽음에 임박한 두려움 앞에 어쩔 줄 모르는 존재처럼 울어댄다. 하지만 하늘이가 엄마가 있을 때, 아빠가 있을 때는 일어난다. 혼자도 씩씩하게 일어난다. 어쩌면 인간은 그런 존재인지 모른다. 아무도 없는 홀로 된 존재 일 때는 바로 설 수 없는 존재. 돈을 잡고 일어나려 하지만, 직장이나 권력을 잡고 일어나려 하지만,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잡고 일어지만 결국 쓰러질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할 때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씩씩하게 일어나는 존재. 하나님의 존재로 인해 홀로 설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