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 아래_슬럼프

스무 번째 이야기

by 박상민


슬럼프


“여보 우리 슬럼프가 찾아왔나 봐요.”


내 입에만 맴돌던 말을 아내에게 뱉어버렸다. 현실을 직시할 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우리 부부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육아 슬럼프. 아는 지인 가운데 프로 야구선수생활을 했던 분이 계시다. 그분과 잠시 대화를 나눌 때가 있었다. 그때 본의 아니게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야구선수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경기에 지는 것도 아니고, 부상도 아니고, 스스로 슬럼프의 늪에 빠져버리는 것이라 했다. 슬럼프라는 단어의 의미는 다양하다. 그런데 어학사전이나 백과사전에서 나온 정의들 보다 흥미 있고, 실제적으로 설명해준 위키백과의 풀이가 맘에 든다.


“슬럼프란? 운동이나 학습에서, 훈련이나 연습을 반복해도 효과가 없고 실제 성적이 좋아지지 않는 경우를 슬럼프라고 부른다. 요컨대 노력을 해도 성적 부진이 나오는 경우 그것을 슬럼프라 부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공부를 하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가 안 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을 슬럼프라고 부르기도 한다. "

(위키 백과 참조)



노력을 해도 잘 안되고, 이해가 되지 않아 좌절에 빠지는 현상. 초보 부부인 아내와 나에게 육아 슬럼프는 기다렸듯이 찾아왔다. 그리고 좀처럼 그 슬럼프의 늪은 우리를 정신없이 몰아쳤다.



우선, 아내에게는 산후풍 증세와 함께 우울함으로 찾아왔다. 아이를 낳고, 튼튼했던 아내. 평소 강하고 긍정적이었던 아내. 그랬던 아내에게 실제로 찾아온 신체적 위기는 정서적 어려움을 유발시켰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어깨와 허리의 통증을 며칠 전부터 호소했다. 그러다 갑자기 연락이 왔다.


“여보, 미안한데 집에 좀 와줘야겠어요. 지금 병원을 가야 할 거 같아요.”


아내의 흔들리는 목소리에 머리가 하얘졌다. 한 번도 이런 식의 전화를 한 적이 없던 사람이라 더욱 크게 다가왔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어떻게 다쳤는지 물었다. 백일상을 차리기 위해 무거운 신시사이저를 혼자 옮기려다 흉골에 무리가 온 것 같다 했다. 아이를 들 수도 없고, 숨을 쉴 때마다 아프다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이상하리 만큼 거대한 분노가 일어났다. 혼자 그 무거운 걸 옮기려 시도했다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병원에 오가면서 화가 풀리지 않았다. 진정했어야 했던 그 시간. 수만 가지 복잡한 생각에 가슴이 터질 거 같았다. 위로와 마음의 지지를 받아야 했던 아내에게 싸늘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흉골 골절이 예상됩니다. 골절 시 두세 달은 병원에 입원을 하셔야 합니다.”


믿을 수 없는 결과 앞에서 분노는 터졌다. 아내를 원망했다. 왜 그걸 혼자 옮겼냐며 나무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내.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는 딸은 자그마한 입술로 옹알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침으로 방울을 만들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순간 눈치를 보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절대로 자녀 앞에서는 싸우거나 화를 내지 않겠다고 수차례 다짐했다. 그런데 그 다짐이 이렇게 쉽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다음날 MRI 결과 골절이 아님이 진단되었다. 그러나 이미 아내의 마음은 골절이 되었다. 무거웠던 신시사이저 보다 더 무겁고 차가운 남편의 말들과 감정들로 인해 마음의 뼈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런 상황에도 우리 내외는 그 주의 주말 백일을 잘 치러냈다. 장모님과 우리 부모님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면서, 집에서 차려진 백일 상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아내의 흉골 쪽의 통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부러진 마음은 그보다 더 어려웠다. 하지만 가족들 앞에서 티를 낼 수 없었다. 부모님들의 장남, 장녀라는 이름. 누군가의 언니, 형이라는 이름.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와 엄마라는 이름은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백일을 마치고 부모님은 올라가셨다.


모든 긴장이 풀려서였을까?



거대한 파도 앞에 꼼짝 못 하고 멍하니 바라보듯, 내 온몸에 근육통이 몰려왔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하고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에 며칠을 버텼다. 열이 오르는 거 같아 해열제를 먹으며, 아내와 딸을 먼저 살려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내 몸은 서있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찾아왔다.


5월 말. 늦봄의 새벽에 느껴지기 어려운 한파가 내 몸을 감쌌다. 전기장판을 틀었다. 그런데 내 치아가 덜덜 부딪치며, 온몸은 떨고 있었다. 옷을 두둑이 입고 괜찮을 거라는 생각만 하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이로 앓는 소리가 방을 울리고 있었고, 그 신음소리에 아내가 찾아왔다.


“여보 괜찮아요?”


하며 조심스레 들어온 아내가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체온계를 가져왔다. 열은 4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구급차 불러야겠어요.” 정신없이 떨고 있는 와중에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기장판 켜서 몸이 뜨거워진 거예요. 괜찮아요.” 아내는 과감했다. 결국 태어나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게 되었다.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이 상황이 원망스러웠다. 아이를 안지도 못하는 엄마. 구급차를 타고 가는 아빠. 백일이 된 아이. 얼마 전 아내에게 말해던 그 슬럼프. 육아 슬럼프의 그림자가 우리 가정을 뒤덮고 있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딸에게 미안했다. 내 감정도 슬럼프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한참을 링거을 맞고 있는데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가장의 무게가 만만치 않죠? 한꺼번에 많은 짐을 혼자 지려니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아플 때는 아프다고 말해주세요. 당신의 아내잖아요. 아픔을 치료해줄 순 없지만 위로하고 기도해줄 수 있어요. 푹 쉬어요.”


계속 핸드폰을 보는데 액정이 흐려졌다. 내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그 눈물은 아내를 향해 몰아쳤던 분노를 보게 만들었다. 그 분노는 나에 대한 분노였다. 더 잘해주지 못하고, 더 함께해주지 못했던 부족한 아빠. 그 분노가 눈물을 향해 씻겨 내려갔다. 그리고 그 눈물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우리 아내와 내게 엄습한 견고한 슬럼프를 파도 앞 모래성처럼 같이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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