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 아래_여행

예순여섯 번째 이야기

by 박상민

“하늘이 아빠랑 여행 갈래요.”


지난여름 가족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하늘이는 종종 내게 이렇게 말한다. 유전일까? 우리 가족은 여행을 참 좋아한다. 아내도 나도 잠시 일상을 떠나 여행 속에서 집중하며, 그 시간을 보내는걸 무척 좋아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행을 참 좋았다. 그리고 유명한 관광지나,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근처에 산이나 호수에 가는 것도 내겐 큰 즐거움이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여행지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로 19에 위치한 ‘지동시장’. 어릴 적 그곳은 내게 가장 즐거운 여행지였다.


어머니께서 시장 갈래? 물어보실 때마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버스를 타고 지동시장에 도착하면 언제나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했다. 시금치를 팔려고 앉아 계신 할머니와 가격 깎아달라는 아줌마의 실랑이가 정겹다. ‘탁’ 해서 쳐다보면 팔뚝이 생선보다 굵은 건어물 가게 아저씨가 하고 도마를 내리쳐 ‘툭’ 하고 생선 머리 떨어진다. 자글자글 떡볶이의 매콤 달달한 향기가 섞여 끈덕하게 어묵과 떡에 잘 버무려져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곳은 순대 골목 거리다. 이곳에 가면 언제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구쉬쉬한 순대볶음 냄새가 좋았다. 특히 보기만 해도 식욕이 당기는 돼지 머리 고리를 보면 그냥 갈 수 없다. 엄마를 졸라 순대 한 그릇을 꼭 시켰다. 접시가 다 비어갈 때 즈음에도 엄마는 순대를 입에 잘 대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 배가 빵빵해지면 겨우 남겨놓은 간과 머리고기와 순대 부스러기를 드셨다. 어린 시절 크게 여행이라 할기에도 민망하지만 엄마와 함께 떠나는 시장여행이 내겐 즐거움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어머님과 여행을 별로 하지 못했다. 얼마 전 기회가 생겨서 인근 시장에 지인과 함께 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은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고, 생선가게 아저씨도, 떡볶이도 있었다. 심지어 순대와 머리고기도 여전했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그렇게 순대를 먹고 있는데 엄마가 생각났다. 그 시절 콩나물 100원 더 깎으려고 애쓰시느라 배고프셨을 텐데 어머니는 아들에게 순대 한점 더 먹이려고 잘 드시지 않으셨던 것이다. 순대가 다 비워질 때 즈음.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지동시장이 나에게 가장 좋은 여행지가 될 수 있던 것은 바로 “엄마” 때문이었다.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떠오르면,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갔느냐가 훨씬 중요했다. 집에서 식은 순대 1인분을 씹으며 오래전 읽었던 태원준 작가의 엄마와의 여행 에세이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를 다시 펼쳐 들었다. 예전에 밑줄 그은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 순간이다. 내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 거창할 필요가 있나? 그저 엄마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좀 더 정중히 표현하자면 엄마가 아무런 걱정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41.P). (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중에서)


나도 이제 엄마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의 여행지였던 지동시장은 어쩌면, 엄마에겐 100원 더 깎아야 하는 삶의 전쟁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우리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던 엄마와 조만간 지동시장을 다시 여행하고 싶다. 그땐 내가 순대를 꼭 넉넉하게 대접하리라. 오랫동안 가족만을 위해 사느라 여행을 잃어버린 어머니께 아름다운 여행지, 지동시장을 찬찬히 안내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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