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덟 번째 이야기
존중
광고이론에는 “3B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광고 영역에서 큰 효과를 보는 모델의 법칙을 말한다. 3B는 Baby, Beauty, Beast의 앞 단어 B를 딴 것으로 아기, 아름다움, 짐승을 말한다. 이를 표방한 듯 최근 들어 방송계에서는 육아 버라이어티가 가득하다. 방송 3사에서 “아빠어디가”를 선두로 “오 마이 베이비”, “슈퍼맨이 돌아왔다”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앞세우고 있다. 그중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생후 1년 된 쌍둥이부터 5년도 안된 아이를 향한 아빠의 양육법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4세와 5세의 아이들을 양육하는 아빠들의 태도는 거의 대부분 “딸바보”의 모습이다. 한 번은 아이에게 콘수프를 하나 사줬더니 더 먹겠다고 떼를 쓰는 장면이 나왔다. 아빠는 안 된다고 연거푸 말했지만 결국 콘수프를 2캔이나 더 사주는 모습이 나왔다. 이 장면을 방송에서는 “딸바보”라고 자막을 띄우며 미화시켰다. 당시 아이를 갖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잘못된 양육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덧 딸바보가 돼버린 나로서 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 안절부절못하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일쑤다.
얼마 전에도 하늘이와 백화점을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카롱을 보고 하늘이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마카롱~ 마카롱” 울음소리는 커지고, 나는 안대를 계속 말했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고 마카롱을 사줬다. 집에 와서 있었던 일을 다시 돌아봤다. 그리고 생각난 건 파리에 갔을 때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궁금해 읽었던 책이 파멜라 드러커맨의 "프랑스 아이처럼"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프랑스 육아법의 커다란 물줄기는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존중이라는 단어이다. 프랑스의 부모들에게 존중이란 굉장히 중요한 가르침의 요소이다. 그 가르침은 젖먹이 어린아이부터 시작된다. ‘가장 먼저 하는 조언은 아기가 태어난 직후 밤마다 칭얼대는 아기에게 곧장 달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기 스스로 마음을 달랠 기회를 갖도록, 반사적인 반응을 하지 말라는 것이죠. 출생 직후부터요.’(70.p) 갓난아이에게 스스로 마음을 달랠 기회를 주는 이 같은 프랑스 육아 철학은 아이들을 존중함으로 인격적인 아이로 형성되는데 커다란 도움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자란 프랑스의 아이들은 카페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어른들이 차분히 커피를 마시고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만드는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 때로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있을 때 프랑스 부모들이 ‘조용해해’나 ‘그만해’ 같은 말 보다 더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아탕”(기다려)!(91.p) 이 역시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나오게 된 프랑스 식의 교육 방법이다.
이 같은 프랑스의 육아방법은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영향이 크다. 루소의 "에밀"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존중을 통한 인격적인 교육의 철학이 프랑스의 아이들을 길러내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에 분명하다. 루소는 지금도 프랑스 부모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운명의 타격을 견딜 수 있도록, 때로는 아이슬란드의 얼음 속이나 말타 섬의 뜨거운 바위 위에서도 혼자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루소의 에밀 중 19.p) 루소의 "에밀"과 파멜라 드러커맨의 "프랑스 아이처럼"에서 말하는 것은 아이들 역시 ‘인격’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어린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어린이'. 이 단어는 4~5세부터 초등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높이는 단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른들로 인해 어린이들의 인격은 존중보다는 박탈당한다. 자연스레 요즘 아이들은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약해졌다. 친구를 사귀는 것부터, 학교의 선택, 진로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까지. 요즘 청소년과 청년들과 만나게 되면 선택 장애라는 병에 걸려 누군가의 선택대로 살아가려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 모습은 아이를 향한 존중이 없는 육아의 결과가 아닐까. 존중의 문화가 결여된 이 시대에 나부터라도 아이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는 훈련을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거대한 한국 부모들이 가진 육아의 견고한 성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