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민 Sep 08. 2021

뭐라도 할수 없기에

넷플릭스 드라마 <D.P>리뷰

나는 군대 이야기를 싫어한다


이야기에는 상상력이 들어간다. 그 상상력은 과거의 일과 사건을 현재로 가져다준다. 단순히 듣는 소리로의 청각뿐만 아니라 과거에 경험했던 시각, 후각, 미각, 촉각 등 모든 것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그때로 돌아간다. 군대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멈춘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때로 나를 이끌어 간다. 축축한 침낭 속에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던 그때. 커대 한 코골이 소리와 이가는 소리. 미련하게 꾸역꾸역 들어오던 한기. 조금 몸을 움직이다 걸린 총기 거치대. 숨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어느새 터득한 얕은 호흡으로 얼마 있다 보면 기상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과 생각에 틈도 없이 몸은 일어나 불을 켠다. 겨우 하루. 하루다. 하루가 지났다. 도대체 하루가 왜 이토록 길고 무서운지.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바뀌었다는데. 어쩜 이 제도는 꿈틀거리지도 않을까? 




지금껏 살아가며 가장 떠오르고 싶지 않은 순간. 바로 이등병 시절이다.  그토록 길었던 2년 넘는 시간. 남북통일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방학을 기다렸던 것보다, 핑클 3집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욱 간절하게 기다렸던 전역. 그리고 위병소를 통과해서 세상에 나오던 발걸음의 무게와 함께 허무함. 아무렇지 않음과 함께 씁쓸함. 유쾌하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전역 후에도 몇 년 동안 군대의 악몽을 시달리게 했다. 그리고 한동안 꾸지 않았던 그 악몽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를 시청한 뒤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중에서

 인스타와 페이스 북에 계속되는 광고 속에 호기심이 있었지만, 정해인, 김성균, 손석구. 색이 있는 연기자들이 펼쳐나갈 이야기도 기대가 되어 손이 갔지만, 눈이 가지질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는데 예상 못한 D.P의 반응과 호평 속에 결국 보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6화까지 모두 섭렵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보는 내내 계속되는 한숨과 나도 모르게 움켜쥐어진 주먹, 그리고 떠올리기 싫었던 그 시절의 냄새가 느껴졌다. 몰입도 있는 스토리 라인은 긴장과 완화를 반복해서 일으켜 주었다. 각각의 사정과 상황으로 인해서 탈영이라는 극단적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 그리고 탈영병을 잡는 과정 속에서 어느덧 상황과 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게 되는 주인공들, 섬세한 이야기꾼의 스토리 전개로 인해 한눈팔기 어렵도록 만들어버렸다.



 특히 당시 상황의 연출의 디테일은 실제 부대와 거의 같은 수준이며, 그것으로 보는 내내 괴로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더 잡아주는 OST도 칭찬할만하다. 개인적으로 프라이머리 음악을 좋아하는데 몽환적이며, 놀랍도록 스며드는 음악은 이 시리즈의 별미다. 또한 군 시절 휴가 나가서 헌병대 앞에서는 늘 긴장하라고 했던 선임들의 목소리가 생각날정도로, 기대했던 연기자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배우들의 선전에 긴장감이 조여올 정도였으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과한 설정과 거기서 뭉그러지는 배우들의 과한 에너지에 부대끼기도 하고, 계속되는 긴장의 노출이 피로감을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인공 안준호와 한호 열의 티키타카와 함께 군부대 내의 박범구 중사와 임지섭 대위와의 기싸움이 피로감을 덜어준다. 마지막 탈영병 조석봉 일병의 이야기는 극 중 가장 몰입되면서도 안타까움이 컸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극적 장치를 위해 진행되었던 내용이었겠지만, 과몰입해서 시청하던 내게는 오히려 과한 설정이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  "뭐라도 바뀌려면 뭐라도 해야지" 이 드라마가 마쳤음에도 귓가에 떠나지 않았던 대사. 그러나 뭐라도 할 수 없기에 여전히 군에서는 수많은 탈영병과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아카데미와 빌보드 차트에 취해 어깨가 으쓱해졌던 대한민국의 실제 민낯에 당황하고 있을 사람들이 꼭 "뭐라도 할 수 없어서" 오늘도 그 자리에서 당하고 있는 그들을 알아주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남자고, 페미니즘을 공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