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민 Jun 18. 2021

저는 남자고, 페미니즘을 공부합니다.

<82년생 김지영> &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리뷰



 어젯밤. 밤 9시. 느지막이 아내가 딸을 데리고 들어왔다. 고된 몸을 말해주듯, 걸음걸이가 피곤해 보였다. 어제 아내는 5살 된 딸의 어린이집 친구네 다녀왔다. 밤늦게 도착한 아내는 겨우 아이를 씻기고, 기절한 듯 잠들어 버린다. 요즘 아내는 아침 6시에 기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하고, 아침을 만든다. 아이를 깨우고, 등원 준비를 한다. 부랴부랴 아침을 먹이고, 허겁지겁 어린이집 등원시킨다. 그리고 바로 일터로 나간다. 음악치료사로 일하는 아내는 때로 학교로, 센터로, 가정집으로 출근한다. 다양한 악기를 어깨에 짊어 메고 이곳저곳을 다닌다. 때로 끼니도 걸러가며 그렇게 일하고, 딸의 퇴원 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앞에 기다린다. 아이를 데리고 바로 집에 오는 법은 없다. 장을 보기도 하고 또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돌아온다. 그리고 저녁 준비를 하고, 밥을 먹인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놀아주며, 재우 기고 집을 정리한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양가의 경조사를 챙기고, 명절이면 양가에 올라가 일을 돕는다. 심지어 남편까지 챙기며 그렇게 살아간다.      


 코로나 백신으로 며칠간 누워있어다. 그 시간 속에 만난 책은 최승범 선생님의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영화는 <82년생 김지영>이다. 둘 다 여성에 대한 생각을 깊게 만들어주었고, 얀센 백신의 강력한 통증을 잊게 만들 정도로 흡입력과 몰입감, 그리고 공감대를 만들어줬다. 남자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이 써 내려간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는 페미니즘에 관한 나의 편견에 균열을 일어났다. 평생 세 남자와 함께 살아간 어머니.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며 버티고 견디는 아내, 앞으로 여자로 살아가야 할 딸의 모습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그동안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편협한 시선의 환기가 일어났다. 한국의 페미니즘 교과서라 일컫는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정희진은 페미니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페미니즘은 저항 이론, 저항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삶에 주인공이 되어가기에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하여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남동생과의 차별이 있었고, 성추행을 당해도 여자로서 조심하지 않아서였고, 직장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과 재취업에 차별을 경험해야 했다. 영화의 모습 속에서 어머님이 살아온 모습, 아내와 살아가는 상황, 그리고 내 딸이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이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의 이해와 배움은 여성을 함께 살아가는 공존적 주체로 이해하는 측면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남자 역시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남자가 눈물을 참지 않고, 시시콜콜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육아의 즐거움과 가사의 고단함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놀이방에서 남자아이가 인형을 만지고 남학생들이 여학생과 함께 축구와 고무줄놀이하는 공종의 삶. ‘여자라서’ ‘남 자라나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원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일(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101~102 인용)이 페미니즘의 이해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     


<당신의 엄마, 당신의 아내, 당신의 딸도 82년생 김지영일지 모른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 누가 뭐라 하든, 어떻게 바라보든 상관없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내 딸이 또 한 명의 지영이처럼 자책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직도 영화 속 지영이의 그 원망 서린 소리가 귓가에 울림을 가져다준다.


 “저 벽을 돌아가면 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벽이고,
그 벽을 돌아가도 다시 벽... 출구는 처음부터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제 잘못이잖아요. 남들은 출구를 다 찾는데 나만 못 찾으니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또 한 명의 지영이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배우고, 살아낼 것이다. 그래서 말해줄 것이다. 출구를 함께 찾아보자고, 니 잘못이 아닌 우리의 잘못이라고, 그리고 너의 삶에 주인공은 바로 너라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가리켜 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벤더와 레드에서 블랙핑크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