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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Dec 12. 2022

충초평판 금지

<충초평판 금지>



공감이란 나와 너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지만, 계몽은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언어다.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술 마시러 갈 때 뭐가 그렇게 행복했니?”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딸의 마음은 내 마음과는 별개다. 그러니, 그럴수록 딸에게 물어봐야 한다. 묻기도 전에, 알기도 전에 딸에게 내 생각만 쏟아 놓는 것이 사랑이나 교육일 수 없다. 그것은 그냥 심리적 폭력일 뿐이다.


  술을 마시고 몸을 망치면서도 행복하다는 딸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그것 역시 엄마의 생각일 뿐이다. 딸에게는 딸의 마음이 있고 딸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딸의 경험, 거창하게 말하자면 딸 개인의 역사에서 비롯한 것들이다. 엄마의 마음, 엄마의 역사와는 다른 개별적인 것이다. 그녀는 딸에게 그렇게 끝까지 공감을 하면서 마침내 딸로부터 “사실은 술을 마시면서 비참한 적이 더 많았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핑퐁게임 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 정혜신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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