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이름 아래_첫번째

첫 번째 이야기. 아빠가 되다.

by 박상민

아빠가 되다.


2017년 2월 9일.


10시가 조금 지난 무렵. 약간의 소독약 냄새를 먹은 하늘색 가운.

그것이 나를 덥고 있다. 26시간. 잠에 들지 않은 채 기다린 시간. 무엇인가를 이토록 기다린 적이 있었는가? 소리를 질러대며 응원하는 간호사들. 위급한 목소리로 힘을 내라는 의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인 나. 그리고 한번 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 육체의 뼈에 힘을 주어 벌어지게 하는 아픔을 홀로 견디는 아내.


시간은 이대로 되나 싶을 정도로 멈추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갔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을 보며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사치일 뿐이었다. 그렇게 멈춰버린 시간 속에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이제 들어오세요.”


그렇게 나는 분만실에 들어갔고, 하늘을 맞이했다.



아빠.


아빠라는 단어가 준비되지 못했다. 그것은 나에게 “아빠”라는 단어가 지니는 위대함 때문이었다.


아빠라는 단어는 내게 그런 단어였다. 그것을 만들어준 분은 혈육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이 땅이 바라는 아버지란 이름의 모습을 살아 내셨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초등학교 시절. 아직도 생각나는 일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피자를 시켜주시면 드시지 않으셨다. 종종 동생과 먹다 남긴 피자의 크러스트만 드실 뿐이었다. 아버지는 피자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언제나 피자를 시키면 피자를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참다못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떻게 아빠에게 피자 한 조각 먼저 드리는 법이 없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먼가 말해야 할거 같아 우물쭈물거리며 말했다.


“아빠는 피자를 안 좋아하시잖아요.”


어머니는 한참 바라보다 말씀하셨다.


“너희는 언제 철들래?”


결국 피자를 우걱우걱 씹어대는 우리를 뒤로한 채 어머니께서는 방에 나가셨다.



아빠는 그랬다. 아들을 향해 늘 퍼주기만 한 그 사랑. 밑 빠진 독처럼 그 사랑을 모르는 아들. 그게 아빠였다. 그리고 그게 아들이었다.



“아빠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


밝게 웃는 의사의 얼굴에 진심이 느껴졌다. 생명의 푸름이 가득한 봄의 마지막 무렵. 우리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생명의 복을 허락하셨다. 아들이 아빠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러나 바쁘고, 분주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시간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심한 듯 시간은 빠른 속도로 도망쳤다. 그러다 아내의 배에 생명이 있음이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해 마음의 산책을 위해 수필집들을 꺼내 들었다. 피천득의 “인연”. 익숙한 수필집이었지만 다시 천천히 읽어 나갔다. 마음이 바빠서 일까?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랐다. 그러던 가운데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들어왔다. 작가 피천득 씨가 딸인 서영이에게 하는 부탁의 글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밥은 천천히 먹고 길은 천천히 걷고 말은 천천히 하고 네 책상 위에 ‘천천히’라고 써 붙여라.”



같은 부분을 몇 번씩 읽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아이의 이름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의 이름. 타인이 부름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이름. 이름이 필요했다. 많은 고민이 있었다. 아내와 내 이름은 흔한 이름이다. 그래서 흔한 이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독특하면서도 부르기 쉽고, 친근하길 바랬다. 또한 종교적 의미나 느낌이 띄지 않길 바랬다. 목회자, 신앙인의 자녀라는 이유로 내 자녀의 이름으로 짓기 싫었다. 인격이 형성되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 아래 주님을 만나는 사람 이길 바랬던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내 삶을 이끌어준 단어. ‘하나님 나라’의 의미가 담기길 바랬다. 부산으로 이사온지 2년. 그동안 우리는 본의 아니게 5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때마다 아내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때로 철거를 앞두고 거세게 불어 재끼는 외풍 속에서 잠들어야 했고, 어색한 오피스텔에서도 지내야 했다. 올해도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사 온 집에서 아내는 뜻밖에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


“이렇게 보금자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우리가 부산에 이사 와서 이사를 참 많이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과 함께 하니 어디든 하나님 나라였어요. 고마워요. 여보.”



그 고백과 함께 우리는 이사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찬양했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천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하늘. 바로 하늘이었다. 내 자녀가 경제적으로 부유하든, 가난하든, 높이 올라가든, 바닥까지 낮아지든 예수님을 모시며 그곳을 하나님 나라로 이루길 바랬다.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담고 있는 하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하늘. 그와 같은 자가 되길 바랬다. 하늘나라에서와 같이 ‘하늘’이라는 의미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늘이라 부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주셨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부르고 싶다. 그동안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너무 많이 봤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여기면서, 자녀의 문제만큼은 자신의 뜻으로 키우는 부모들. 자녀의 교육, 자녀의 진로, 자녀의 꿈까지 자신의 밑그림에 벗어나지 않길 바라는 부모들. 믿음을 지키다 마지막 자녀라는 이름 아래 무너지며 기독교의 가치를 버리는 부모들.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는 하늘이라 부를 것이다. 그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라는 인지와 인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 한 자 한 자를 떼고 생각해도 좋았다. ‘하’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상중하라는 의미 속에서 잘 사용된다. 아래를 뜻하는 한자 하(下). 자본을 통한 승자독식 세상. 중심부 콤플렉스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인기 없는 단어. 아래 하(下)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고1:27). 또한 이 땅을 섬기고, 자신을 대속물로 주러 오신 그분 예수님의 마음(막 10:45) 이 담겨있는 단어. 그 단어가 바로 아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하’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나는‘늘’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늘’이라는 단어는 개인적인 열망을 담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한글로 ‘계속하여 언제나’라는 뜻을 가진 단어 ‘늘’. 하나님의 성품 ‘늘’. 그 단어를 닮아가길 바랬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아이의 이름을 ‘하늘’이라고 지었다.


분만실에 들어갔다. 3.1kg. 아내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생명이었다. 의외로 크게 울지 않았다. 잠시 후 간호사가 가위를 주며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엄마와 아이와의 분리였다. 흐물거리는 핏줄이라 여겼던 탯줄. 의외로 잘라지지 않고, 강렬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위해서 탯줄 하나도 아름답게 제작하셨던 것이다. 이제 아이를 씻기는 차례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생명으로 보지만, 태아는 태어나면서 죽는다는 공포를 느낀다. 수개월간 자궁에서 양수를 통해 평안하게 자라온 아이. 산모가 느끼는 고통만큼 태아 역시 엄청난 고통을 경험한다. 심지어 자신의 어깨뼈까지 으스러지면 그렇게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선택한 산부인과에서는 이런 아이를 배려하기 위해 많은 코칭을 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아빠의 숙제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분리라는 공포를 경감시키기 위해, 아빠들은 숙제가 있다. 엄마 뱃속부터 태교 할 때 노래 한곡을 정해, 갓 태어난 아이를 씻기며 불러주는 것이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아이의 얼굴과 몸을 씻겼다. 고마웠다. 건강하게 태어나준 그것 하나 만으로 감사했다. 부모님이 생각났다. 이와 같은 고통을 사랑으로 극복한 어머니.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한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리고 뱃속에서부터 불렀던 그 노래. 하늘이가 앞으로 그렇게 자라나길 바라며 부르던 그 노래를 불렀다.


“하나님께서, 하늘이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기를, 가난한 영혼, 목마른 영혼 하늘이 통해 주사랑 알기 원하네.”


그렇게 하늘이가 이 땅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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