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물빛

비가 오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우리는 국민학교 동창이다. 같은 반을 한 적은 없는데, 3년간 아람단활동을 같이 해서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고 지냈다.


아이러브스쿨이 공전의 히트를 쳤던 그때, 동창들은 온라인에 먼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만나기 전 두근두근 설레어하며 궁금한 친구의 안부를 묻곤 하면서 첫 동창모임을 맞았다. 스물 중순의 나이라 반은 학생이고, 반은 사회초년생이었다. 이후 삼삼오오 친구들이 만남을 가지는 동안에도 나는 실험실을 벗어나기 어려웠고, 밤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모임 후에 서로에 대한 소감을 후기로 남기면서 그 친구가 나를 궁금해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나도 그 친구가 궁금하긴 했다.

만나기로 약속했던 날, 실험은 망하고 저녁도 못 먹고, 버스도 늦게 와서 귀가가 늦었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얼른 따뜻한 샤워라도 하고 싶었다. 그날따라 급탕문제로 온수도 안 나와서 울고 싶은 마음이라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연락을 했는데, 찬구는 굳이 기다리겠다며 언제든 준비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커다란 들통에 따뜻하게 물을 끓여서 샤워를 마친 후에야 몸도 말끔하고 기분도 좀 나아졌다. 너무 늦어져서 미안함을 전하려고 연락을 했는데, 집 앞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갔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친구는 나를 차에 태우더니 어디론가 데려갔다. 꽤 멀리 가는 것 같았는데, 도착해 보니 대변의 전복죽집이었다. 비 와서 춥고 배고픈 때에 따뜻한 전복죽은 온 마음을 말랑하게 녹여주었다. 그제야 몸에 열이 나는 걸 알았다. 친구의 친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잠시 알아보더니 근처 열려있는 약국을 찾아 약을 손에 쥐어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아이였구나.


우린 고등학교 때 단과학원에서 본 적이 있었다. 서로를 잘 모르지만, 궁금은 하던 사이. 심지어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적도 있었지만, 모른 척했던 기억도 있다. 우린 비 오던 그날 이후로 친해졌다. 자주 소식을 전했고, 우울한 날에는 가슴이 뻥 뚫릴 듯 멋진 야경이 있는 곳에 데려가 주기도 했다. 물론 내가 늘 남자친구와 길게 통화한다고 구시렁거렸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아껴주고 잘 챙겨주던 그 친구. 아쉽게도 내가 결혼한 뒤 외국에 나가며 연락이 끊겼다.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은 종종 전해 듣고 있다. 그럼, 잘 지내야지. 바쁜 일상에 잊고 지내기 일쑤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종종 따뜻하던 그 녀석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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