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by 물빛

바쁘게 살다 보면 생일이 언제인지도 잘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사실 현대의 직장인들에게 생일 당일은 주말이 아니고서야 그날을 딱 기념하기가 어렵다. 장거리 연애만 8년에다 주말부부 22년 차인 나로서는 생일은 그냥 숫자일 뿐이다. 매년 가족, 친구들과의 생일파티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적당한 날을 정해서 맛있는 것을 먹고 함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물론 생일을 빌미로 함께 하는 기회를 갖고 행복한 시간을 나눈다는 점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이가 생기니 생일에 대한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큰아이가 아기일 때 어디선가 읽었다. 백일에는 백 집에 돌에는 열 집에 수수팥떡을 나눠먹으며, 열 살까지는 매해 챙겨주란 말이었다. 붉은 수수와 붉은팥이 액운을 면하게 해 준다고 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더욱 좋은 일일테다. 엄마는 삼신할머니께 기도를 올려야 한다며 새벽같이 집에 찾아오셨다. 팥밥에 미역국을 끓여 절을 하고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왠지 종교에 거부감이 있는 나는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멋모르던 초보엄마는 엄마 곁에서 집에서 차린 백일상에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올렸다. 그저 아이의 액을 막아주고 건강하게 자라게 해 준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다.


아이의 생일날에는 잠이 덜 깬 아이를 안고, 귓가에 “사랑하는 아가! 생일 축하해!”라고 말한다. 팥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고, 삼색나물을 무치고, 잡채를 한다. 조기를 노릇하게 굽고 또 그 외 아이가 좋아하는 찬을 준비해서 한 상 그득히 아이 앞에 들이밀고서 “생일이니 네가 먼저 수저를 들고 맛있게 먹으렴.”이라고 한다. 내 품에 있을 때까지가 내 아이인 것이지.


수수팥떡은 아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떡이라서 열 살이 한참 지난 지금도 매해 준비한다. 직접 만들 때도 있고 바쁘면 주문해 먹기도 한다. 어떻게 준비하든 내 마음이 가고 아이가 잘 먹어 건강하면 되는 것 아닌가. 올해의 수수팥떡을 만들던 나의 기원은 만으로 열여덟, 열여섯이 된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케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곧 성인이 될 텐데, 물가에 자식 내놓기 두려운 심정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올해 큰아이는 일본에 가서 홀로 생활하기 때문에 생일날 곁에 있지도 못해서 더 아련한 마음이었다.


생일이란 누군가가 그 자식을 세상에 내어놓은 날이다. 이전에는 나를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함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아이를 키우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내 아이는 내가 아이를 갖기로 했을 때, 본인의 의지 없이 선물처럼 내게로 와 주었다. 이 세상에 아이로 인한 기쁨과 행복을 함께 가져온 귀한 존재이다. 생일날 만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들여 건강히 잘 자라줌에 감사를 표하고 언제가 훨훨 날아오를 날을 위해 귀하게 여기려 한다.


오늘은 조카가 태어난 날이다. 얼마 전 수능을 치르고, 앞으로의 입시결과를 기다리느라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늘 하루라도 행복한 날이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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