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의 태명은 선물이었다. 둘째 아이는 워낙 바쁜 시기에 온 아이였다. 일을 하며 큰 아이를 돌보느라 이미 넋이 나가있을 때였어서 태명은 큰 아이의 동생이니 보송이라 지었다. 밤에 보송이에게 젖 먹이느라 돌아누우면, 선물이는 등 뒤에 바짝 붙어 누웠다. "엄마가 보송이 젖 먹여야 해서 못 안아줘서 미안해." 하면, "엄마, 괜찮아요. 이렇게 등에 붙어만 있어도 좋아요." 하는 말에 뭉클해서 낮 시간에 한번 더 꼭 안아주곤 했다. 셋이서 한 이부자리에 꼭 붙어서 지내던 아이들의 유아시절이다.
두 살 터울의 두 아이와 생활을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어느 것도 예측대로 되는 일이 없고, 체력은 회복되지 않고, 나날이 살이 오르는 아이와 달리 나는 나날이 지쳐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보면, 살아야겠다,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을 앞두고 내 커리어와 육아를 두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암담하고 속상하고 슬펐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육아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을 때, 아이들을 보고서는 웃어야지 생각했다. 놀랍게도 나를 보고 방싯거리던 아이들은 내 모든 시름과 육신의 아픔을 멀리 날려주었다. 어쩌면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한 줄기 보였었다.
둘째가 십 대가 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많이 아팠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미워할 때가 있었다. 작은 일에도 감정이 크게 동요했고, 타인으로부터 공격받는다고 여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매일 아이를 안아주는 일이었다. 가기 싫지만 학교에 다녀온 아이를 안아주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너는 엄마에게 살아갈 희망이 되어주었다고 매일매일 말해주었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엄마와 이야기 나누자고 이야기했다. 너를 믿지 못하면, 엄마를 믿고 해 보자고 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언제 끝날지 끝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고등학생이 된 작년에 아이는 학교에서 웃기 시작했다. 올해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한다. 나의 희망, 너의 희망. 우리는 서로의 희망이 되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