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하고 싶어

기타 연주자로 가는 길

by 물빛

해운대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우리는 다시 구례로 향했다. 처음 본 날부터 따뜻하게 맞아주신 라라님 덕분에 구례의 라라님댁은 우리의 쉼터가 되었다. 언제든 와도 된다며 환영해 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삶에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짧게 1박만 하여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장거리 운전이 버겁지만, 즐겁게 달려간다.


큰아이는 언어의 문턱을 넘었고, 작은 아이는 무사히 고교 생활에 안착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이라면 짧은 방학을 활용하여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할 텐데, 우리 집 두 녀석은 학원은 질색을 한다. 다녀본 거라곤 예체능 학원밖에 없으면서. 혼자 공부하다 부족한 영역은 인강을 활용하고, 영어만큼은 내가 도와줄 길이 없어서 과외를 한다. 그래서 고등학생이지만, 시간이 꽤 여유롭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뭐 공부는 알아서 해야지.


이번에는 큰아이의 요청이었다.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기타 연주에 영상을 찍어 참여하기로 했단다. 독학으로 연습하는 터라 잘하지는 못하는 상태이지만,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찾아서 하는 것이 기특했다. 좋아하는 일본밴드의 내한공연도 찾아가고, 굿즈도 사고, 그들의 연주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와서 복기한다. 아직은 어림도 없는 테크닉에 감탄하면서, 자신이 그 음색을 낼 방법을 고안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래서 기타와 앰프와 이펙터를 몽땅 넣었더니 짐이 트렁크에 가득 찼다. 영상 촬영에 입을 옷과 모자도 살뜰히 챙겼다.


작은 아이는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다. 아이는 식물을 아주 좋아한다. 지난번 방문에서 라라님이 잔디관리에 애먹는다고 해서 간단한 방법을 말씀드렸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계절마다 정원의 다양한 식물들이 얼마나 자라는지 관찰하는 것도 이 아이의 기쁨이다. 이번에는 짧은 일정이라 캠핑장비는 두었다. 다만, 캠핑카에서 조용한 사색을 하고 싶어 했다.


낯가리고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극 내향인 셋이 줄곧 찾게 되는 것은 오롯이 라라님의 힘이다. 함께 지내며 에피소드를 쌓아간 것도 있지만, 누구보다도 아이들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분이시다. 거의 분기별로 뵈어도 아이들은 어제 본 사람인 양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아이들, 특히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각자의 잣대를 들이밀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재단하면 금세 입을 닫는다. 온정적으로 다 들어주고,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 간혹 조언해 주실 때에도 본인의 의견을 말씀하시며, 그에 대해 어떤지 생각을 물어보시니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평온하고 조용한 자연이 한몫 단단히 거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햇살이 눈부신 날인 줄 알았는데, 저녁을 먹으려 하니 날씨가 꾸물거린다. 비만 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어김없이 식사 중부터 비가 온다. 우리가 비를 몰고 다니는 것인가. 처음 갔던 날을 제외하면 갈 때마다 비가 왔다. 큰 녀석은 생각보다 쉽게 체념했다. 별빛 아래 연주영상을 찍으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비가 오는데, 야외에서 연주를 진행할 도리가 없었다. 자연을 어떻게 이겨. 촉촉이 젖은 밤은 환한 아침으로 열렸다. 이내 햇살이 들어 데크도 다 말랐지만, 우리는 집에 돌아와야 하는 걸. 연주영상은 집에서 찍자. 대신 기타 사진은 남겨야지.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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