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두의 힐링 스팟
씨실 날실이 규칙적으로 아름답게 엮이면 멋진 작품이 된다. 한쪽 끝이라도 빠지거나 흐트러지면, 손대기 어려울 만큼 엉키기 십상이다. 엉킨 실타래를 풀려면 그 끝이 어디인지를 찾아서 살살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지 않고 대충 잡아당기다가는 풀기는커녕 더 꽉 묶여버린다. 그런 상태에는 자르는 것밖에 답이 없다.
추석 연휴를 맞아 통영으로 떠났다. 몇 년 전 페친들이 소개해준 통영의 맛집들을 보며, 넋을 놓고 보다가 우리도 가보자 했다. 신선한 해산물과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복국이며, 오목조목 예쁜 해안선들. 부산에서 나고 자랐고, 해운대서 살고 있지만, 통영은 또 다른 멋과 맛이 있어 보였다. 해운대에서 출발하는 방법은 몇 가지 있다. 그중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천마터널을 지나 거가대교를 건너가는 방법은 민자라 톨비가 비싼 대신, 아름다운 여러 바다 위를 달리는 혜택이 주어진다.
아이들이 중학생일 때 처음 가족여행을 가서는 절경에 놀라고, 신선하고 맛있는 먹거리와 부산대비 저렴한 식비에 감탄을 하며 우리 모두가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해 내 생일에는 부모님도 함께 가서 단골집에서 왁자하게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꽤 고품질의 로스터리 카페도 몇 군데 있어서, 숙박을 하기 곤란한 때는 중앙시장에서 횟감만 장만해서 카페에 앉아 쉬다 오기도 했다. 길을 걷다 발견하고 단골이 된 음식점의 젊은 토박이 사장님이 위스키바를 오픈했다는 소식에 응원차 달려가 정말 다양한 위스키를 맛보기도 했다. 우리에게 통영은 먹방을 의미했다. 길을 걷다 먹고, 또 걷다 먹고, 또 먹고.
관계가 틀어지는 건 한 순간이 아니다.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할 지라도 삐걱거리는 것을,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피부로는 알고 있다. 표현하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는 것일 뿐. 어른들은 오랜 주말 가족이 마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곤 하셨지만, 그래서인 것은 아니다. 십 대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상황일 뿐이었다. 서로의 생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다르고,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가던 관계의 흐름이 깨진 것은 아이와 할아버지의 전쟁. 바로 그 1차 전쟁 이후다.
그때도 어김없이 여름 초입에 통영에 갔다.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와 중2이던 작은 아이는 마냥 신나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엇을 먹을 것인지 이야기하고 순서와 동선을 정하고, 밤에 먹을 야식으로 컵라면까지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즐겁게 지내고 일어난 아침. 가기로 한 해물탕집은 줄을 선다고 소문나 서둘러야 하는데, 뜬금없이 남편은 큰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언급을 시작하더니 무려 1시간을 넘게 끌었다. 아이는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 뻔한데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차분히 들었다. 그러나 1시간이 넘어가자 내가 폭발했다. 나는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식사 때를 놓치면 성질이 난다.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 에너지가 없는데, 무슨 마음의 여유인가. 게다가 오전에 먹어야 할 약이 있는데, 꼼짝없이 투약도 못하는 상황이 짜증 났던 것이다. 눈치를 보던 가족들이 모두 준비하고 가게에 갔을 때는 역시 대기가 길어서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쩌면 사소한 듯한 이런 일들을 봉합해 가면서 가족은 오히려 튼튼해지기도 한다. 서로의 감정적인 욕구들은 다르지만, 그것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좀 더 잘 알아가기도 하니까. 긴장 상태가 좀 완화되어서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사건은 저녁에 터졌다. 어른들께 드릴 횟감을 챙겨드리려고 부모님을 만났다가 남편이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들을 것이다. 아이와 할아버지의 관계회복. 자네가 좀 신경 써서 화해시켜 보라는 주문. 남편은 그 상황에 있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될 리가. 평소와 다르게 권위적인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인가. 그 날 아침부터 긴장이 팽팽한 상태를 만들더니, 어른들과 헤어진 후에 아이들을 불러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화해라는 것은 잘잘못을 따지고도 감정이 연결된 것이라 마음이 열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게 내막을 잘 모르지만, 어르신이 원하니 "화해해라." 한마디로 해결되는 것이었던가.
큰 아이의 힘든 마음에 달라진 아빠에 대한 짐이 얹혔고, 제대로 서보려던 작은 아이의 마음에 아빠에 대한 미움의 불씨가 커졌다. 아이들이 토로하는 것은 아빠가 너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아빠는 이런 저런 대화가 통했는데, 지금의 아빠는 일방적이어서 대화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빠가 저희들을 사랑한다는 것, 위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서운해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다른데 소통이 되나. 안그래도 마음이 힘든 아이들에게 아빠가 집에 오는 주말을 살얼음판이 되곤 했다. 늘 바쁜 남편 덕분에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게 이십년에 가까운데, 나 역시 서운함이 가득했다. 그러다 남편이 있던 주말에 할아버지와의 2차 전쟁이 벌어졌다. 그걸 보고 난 남편은 "이건 화해가 불가능해. 쟤는 마음 안바꿔. 내가 아버님 도와드릴 수가 없네."라 하더니 완전히 손을 뗐다.
아이의 입시를 앞두고 신경이 바짝 곤두섰던 가을. 우리는 명절 연휴에 처음으로 어른들을 뵙지 않기로 결정했다. 남편과 나만 따로 만나 인사드리고 연휴에는 아이들 환기도 시킬 겸 다시 통영으로 갔다. 아이들과 지리산에 발을 들여놓은 후로는 처음이었다. 늘 먹방만 찍던 우리였는데, 숙소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남편이 루지를 타러 가자고 제안했다. 응? 루지? 경험을 해봤던 큰 아이는 환호했지만, 작은 아이와 나는 난색을 표했다. 우리는 놀이기구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 남들이 스릴있다고 하는 것을 싫어하는 쪽이다. 그런데, 남편과 큰아이 둘이 한 편이 되어 계속 설득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상황봐서 당신들만 타던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루지안내소에 갔더니, 티켓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한번 타는 것보다는 패키지가 저렴했다. 그러니 경험자들이 한번만 타고싶지 않을 거라며 패키지를 구매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루지를 타고 내려오는 길은 코스마다 조금 다른 경치를 볼 수 있지만, 바다가 보이는 코스는 너무 아름다웠다.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았다. 같이 출발한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마지막 구간에서 뒤에서 오던 큰 아이가 작은 아이들 들이받아서 주의를 받기도 했다. 속도가 없는 구간이라 다행이었다. 여유롭게 천천히 내려오는 나를 기다리다 가족들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지난 번 통영 여행에서의 긴장감이 싹 사라졌다. 놀이기구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어?
다쳐서 상처가 심하게 났을 때 시간을 다투는 긴급한 경우에는 외과에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외과에서 봉합하는 것은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모양을 잡아가며 하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제대로 꼼꼼히 살펴보고 이왕이면 흉터도 남지 않게 신경쓰고 싶다면 성형외과에 가야 한다. 상처에 대해 '몇 바늘 꿰맸어' 라는 표현은 그만큼 상처가 컸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성형외과에서는 그 '몇'이라는 바늘땀 수보다 회복의 흐름과 상태가 더 중요하다. 봉합이라는 같은 행위에 다른 목적을 두는 것이다.
통영에서의 시간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맴돌던 관계를 끊어내지 않아도 되는 봉합사를 선물해 주었다. 얽힌 실타래의 끝을 찾아내는 일은 성형외과에서 오롯히 집중해서 촘촘히 봉합하는 것처럼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이고 몰입해야만 가능하다. 시리고 아픈 기간동안 모두가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 관계를 훼손하지 않고 지내려고 노력을 해왔다. 불편감이 존재하지만, 서로의 감정선을 유의하면서, 얽힌 실타래의 끝을 찾아 이리저리 굴려보며 소통해보려는 시도를 조금씩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것은 함께 해서 즐거운 순간을 다시금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거기서 얻었다는 것이다. 오롯이 함께 있어서 느끼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는 방법으로의 선택. 한 땀 한 땀 느리게 엮은 봉합사는 어느덧 형태도 없이 사륵 녹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