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걱정은 나의 몫

by 물빛

10월 말은 일본대학의 외국인특례입학 원서를 접수하는 기간이다. 학교마다 일정이 조금씩 다르고, 대부분 원하는 학교를 몇 개 정해두고 입시에 임하지만, 여름에 받는 일본어성적과 일본유학시험의 점수에 따라 조정되기 일쑤다. 미술 전공의 경우에는 학교에 가서 실기시험을 치르는 것이 필수이고, 학교에 따라서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거나, 소논문(에세이)을 작성하는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아이는 도쿄에 있는 학교 두 곳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 한 학교는 실기시험, 다른 학교는 실기시험과 포트폴리오를 요구한다. 여름에 오픈캠퍼스에서 뵈었던 교수님의 품평이나, 미술학원에서의 평가는 꽤 좋은 편이었다. 좌충우돌하며 준비한 일본어 역시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좋은 점수가 나와서 내심 입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실기시험은 12월에 치러질 예정이라, 미리 항공권과 호텔도 예약을 해두었다.


이전 글에 언급한 감각테스트는 1200자 정도의 글이 작품에 같이 들어가는 시험이어서 소논문을 따로 준비하는 것보다도 신경 쓸 것이 많다. 다른 학교는 실기시험으로는 손 소묘를 치르고,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해서 가을이 바빠졌다. 아이는 작품 수를 많이 제작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확장하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중학교 때 3D공학 동아리에서 페스타를 하면서 준비했던 LED 센서를 응용하여 활용하느라 사이즈가 크고, 간이여도 전기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했다. 학교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는 방법은 사진을 찍어 포스터를 만들어서 원서접수 시 함께 발송하고, 현지에서 시험을 치를 때 실물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실내촬영은 학원 내에 마련된 간이 스튜디오에서 어려움 없이 진행했다. 그런데 굳이 야외촬영을 꼭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쩔 수 없이 몇 군데 촬영 포인트를 사전답사하여 정하고 낑낑거리고 작품을 들고 가서 촬영을 했다. 처음에는 날씨가 청명한 가을날이었지만, 촬영 막바지로 갈수록 바람이 몹시 불어서 키가 큰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원서접수를 앞둔 며칠 전, 학원에 있던 아이가 심각하게 연락을 해왔다.

"엄마, 추천제로만 갈 수 있는 학교가 있는데요. 선생님이 저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도쿄가 아니에요."

학교 이름도 그 학교가 있다는 지역이름도 처음 들었다. 아이는 학교는 이미 알고 있던 곳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곳에서 생활이 가능할지가 먼저 걱정되었다. 일단 전화를 끊고, 선생님과 긴급 상담을 신청하고, 그 지역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그 지역에 대해 물어보았다. 친구는 다른 것보다 눈이 많이 와서 20-30센티쯤 쌓이는 소도시라고 했다. 겨울에 추운 지역이라는 뜻인데, 아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아이는 도시지향적인 아이라, 제주도 같은 곳에서도 길게 사흘 있으면 갑갑해한다. 남편과 그런 점이 너무나도 닮아서, 도심의 마천루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는 아이이다. 그런데, 소도시? 둘째도 아니고 네가?


선생님과의 상담시간. 아이에게 추천한 학교는 토호쿠(동북) 지역 야마가타시에 있는 미술학교이다. 실은 그 학교를 지원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일본어성적이 안 나왔단다. 학원에 배정된 추천권이 한 장이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는 하였으나, 학교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아이가 큰아이라고 하셨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지만, 아이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학교에 지원하게 되면, 합격발표가 날 때까지 다른 학교에는 지원할 수 없다. 우리나라 입시로 말하면 수시납치 같은 것이라고 할까. 추천제이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실기시험을 치르지는 않고, 서류전형에서 통과하면 12월 초에 줌으로 면접을 본다. 대부분 합격을 하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하면 불합격처리도 가능하다. 준비하던 다른 학교들의 실기시험기간에 이 학교의 합격자발표가 있다. 이곳에 원서를 넣으면, 아이는 준비한 두 학교 모두 포기하는 것이 된다. 행여나 불합격하게 되면 부득이하게 1월에 지원하는 다른 학교들로 눈을 돌려야만 한다.


내가 상담하는 동안, 아이는 열심히 그 학교와 그 지역의 장점을 찾아서 헤맸다. 우리가 결정하기까지 고민할 시간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는 아이가 제대로 잘 지낼 수 있을 지에만 초점을 두었다. 도쿄는 근처에 지인들도 있고, 아이의 미술학원 친구들도 몇몇은 가게 될 것이다. 애초에 유학이란 것이 모험이지만, 과연 괜찮은 걸까? 아이는 장점을 손에 꼽아가며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일본 전역에서 인구당 라멘가게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두 번째는 아이가 좋아하는 리듬게임기가 있는 게임장이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세 번째는 일본 전체 중 온천이 모든 시정촌에 있는 지역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계속 웃었다. 라멘집이 많다는 것은 굶을 일이 없다는 것이고, 게임장이 있다는 것은 혹여라도 즐길거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고, 온천이 많다는 것은 엄마가 와도 좋아할 거란 말이다.

"그런데 있잖아. 눈이 많이 와서 추운 건 어떻게 견딜 거야?"

"엄마. 저는 탄자니아에 다녀왔잖아요. 거기에 가보니, 세상 어디에 가도 저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일본이잖아요. 시설이나 음식이나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졌다. 세상 어디를 가도 잘 지낼 자신이 있다는 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별것 아닌 것 같은 장점을 손에 꼽아가며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미 마음에 정했다는 뜻이다. 하려고 들면 장점이 보이고, 하지 않으려면 단점이 눈에 선한 법 아닌가. 도쿄는? 주문해 둔 기타는 어쩔 셈이지? 나 혼자만의 걱정이고 고민일 뿐이다. 아이는 그저 한국인이 거의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가의 출신 학교이며, 무시험제로 합격이 가능한 그곳으로 마음을 정해버렸다. 어쩌면 그곳으로 가려고 포트폴리오를 그렇게 제작한 걸까. 그 학교에서 찾는 인재상은 예술을 하지만, 과학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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