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몸이 좋지 않으면 죽을 먹는다. 무슨 당연한 소리냐 하겠지만, 일단 나는 부드러운 죽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고질적인 위식도역류염을 어릴 때부터 달고 살았다.
신혼집은 울산에 마련되었다. 나는 여전히 학생이었는데, 울산에서 학교가 있는 부산으로 매일 다녀야 했다. 물론 차도 없었다. 시외버스-지하철-학교순환버스로 이어지는 출퇴근 길이라, 집에 돌아가면 8시가 조금 못 되는 시간이었다. 당시엔 그 시간에 밥 먹을 곳이 별로 없기도 해서 대부분 집에서 저녁을 지어먹었지만, 내가 아픈 날이면 꼭 길 건너에 있는 죽집에 갔다. 지금이야 죽 체인점도 많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병원 근처가 아니면 죽집을 찾기 어렵던 시절이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본죽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찾아보니 본죽은 2002년 대학로에 첫 매장을 냈다고 한다. 그 집은 지방인데도 브랜드 창업 초기에 발 빠르게 오픈했던 것이다. 내가 끓이지 않아도 되는 죽이라니. 아플 때 직접 쑤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느 날엔가 시누이와 함께 죽을 먹으러 갔다.
“언니 몸 안 좋아? 언니 몸 아프면 꼭 죽 먹으러 가자더라”
하는 시누이 말을 귀엽게 들으며 가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젊은 여성이던 사장님이 말하는 걸 들었다.
“엄마. 나는 손님들이 죽 한 그릇 다 드시고,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해주시면, 더 정성껏 음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이 안 좋을 때 내가 만든 이걸 드시고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는 거 보면 너무 뿌듯한 거 있죠.”
주방에서 속닥이던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 후로는 같은 죽인데도 더 맛있게 느껴지곤 했었다. 그때는 죽 종류도 요즘처럼 많지 않았고, 아마 같은 죽도 레시피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전국에 매장이 엄청 많아지고 배달도 되면서 느끼는 본죽의 맛은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 동네에는 십여 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무렵에 오픈했던 죽집이 있었다. 나보다 연배가 좀 더 있던 사장님 부부가 운영하셨는데, 정말 집에서 불린 쌀로 만든 듯 정성 가득한 죽과 정말 맛있는 찬들이 그득했다. 조미료 쓰지 않고 만든 찬 다섯 가지를 내어주시는데, 하나같이 맛있어서 어떤 찬은 조리법이나 비법을 배워오기도 했다. 7년쯤 전에 백화점 입점을 권유받으시고, 유명백화점에 지점을 내셨다. 더할 나위 없이 바빠지면서 2호점이 안정되면 본점으로 오시려고 한다 하셨다. 하지만, 사정은 늘 달라지는 법. 매장에 아르바이트생이 주로 상주하게 되다가 결국은 재작년엔가 다른 분에게 넘기셨다. 새 사장님은 상호도 거의 비슷하게 운영하셨지만, 결정적으로 맛이 너무 달랐다. 결국 새 사장님도 재작년에 접으셨고, 그 죽집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았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건강검진을 마치고, 모처럼 좀 과식을 했다. 부산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멀미도 살짝 했다. 아이와 가볍게 먹을 것을 고르다가 죽을 먹기로 했다. 요즘은 죽을 사 먹으려면 선택의 여지없이 동네 본죽을 이용해야 한다. 물론 배달업체에는 여러 업체가 입점해 있지만, 가서 먹는 것을 선호하는 탓이다. 이곳은 나이 지긋하신 부부와 주방이모가 계시는데, 갈 때마다 마음이 좀 불편하다. 딱히 친절하지 않은 것은 괜찮다. 문제는 매장에서 식사하는 손님이 있는데도 남자사장님이 여자사장님께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계속 해댄다는 것이다. 식사하는 곁에서 사장님 부부가 공방전을 벌이시면... 휴.
20년 전의 그 젊은 사장님과 손맛 좋던 동네 죽집 사장님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음식에는 만드는 이의 마음과 정성이 고스란히 녹아난다. 죽을 먹는다는 것은 어딘가 아프거나 아프지 않더라도 소화가 잘되는 부드러운 음식을 찾는 경우이다. 체인점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그런 마음의 정성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인 걸까. 아쉬움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