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룹은 네 명이었고, 모두 엄마들이었다. 그룹 수업은 첫날의 레벨테스트 결과를 보고 결정되고 같은 레벨로 최대 여섯 명까지 묶어서 수업한다. 담당 선생님은 '엄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데이빗'이었다. 네 명이었지만, 실제로는 두 달간 거의 선생님과 헤나와 나 셋이서 수업을 했다. 헤나와 나는 동갑이었고, 같은 나이의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데이빗은 딸만 둘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매일의 수업에 주제는 있었지만, 우린 왠지 모르게 진실게임을 하듯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을 했다.
그날의 주제는 결혼을 한 이유였다.
어설픈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았다. 나는 나만의 안식처가 필요해서 결혼을 했던 것이었다. 어쩌면 도피였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워딩은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였다.
우리의 결혼은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그의 집에 놀러 갔던 날 어머님은 내게 무례한 말을 했다. 그때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시기였어서 못 들은 척을 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서 같은 상대와 상견례도 두 번이나 했다. 심지어 결혼식을 이틀인가 사흘인가 앞둔 날 아빠는 이 결혼을 꼭 해야겠냐고 했다. 부모님의 평생의 멘토인 스님도 내게 이 결혼을 하면 보살님이 많이 참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헤나는 연애결혼이 아니었다. 금융기관에서 근무했었기에 꽤 좋은 조건에 맞추어 결혼을 했고, 신혼 기간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더욱 부부의 차이를 많이 느끼는 상황이었다. 나는 완전히 반대 상황이었다. 연애 기간도 길고, 신혼 기간도 길었다. 오랫동안 연애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이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남편과 함께 사는 건 평온하고 재미있었다. 각자 잘하는 영역으로 집안일을 알아서 나누어서 하고, 서로 일하는 시간을 존중했다. 다만, 함께 사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사람이 되었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되돌아보니 도피인가 싶었는데, 생각보다도 꽤 이상적인 결혼 생활이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