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정도 요리를 쉬었다. 다시 요리를 재개하려다 냉동실에서 발견한 것이 사골이었다. 예전에 엄마가 주신 사골이 너무 많아서 한소끔 데쳐놓고 반 나누어서 냉동해 둔 상태라 해동해서 끓이기만 하면 되었다. 고기가 하나도 없지만, 일단 낮에 제일 큰 찜통에 사골을 올려두었다. 아이 치과에 다녀오는 길에 사태살도 사 왔다.
때마침 커피가 떨어지기도 했고 몸을 관리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해서 당분간 커피를 금해 보기로 했다. 커피를 금하고, 술을 금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문득 아빠도 나도 독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필요하면 좋아하던 것이라도 바로 멈춘다. 아빠는 골초에 가까울 만큼 담배를 많이 태우셨었는데, 큰 아이가 태어나 한 번 안아보신 후에 바로 금연하셨다. 나는 커피홀릭인데, 큰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완모 할 때까지 2년가량 커피를 한 방울도 안 마시고 버텼었다. 남편은 그렇지 않다. 간수치가 올라가서 건강을 위해 조절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맥주를 끊지 못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줄여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제로맥주에 도전해서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질지 못하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카모마일, 루이보스, 메리골드 등 허브차와 이모가 달여주신 상황버섯물로 커피를 대체해보고 있다. 약을 먹으니 어차피 졸리긴 한데, 닷새쯤 지나니 낮에 졸지 않고 버틸 수도 있게 되었다.
대신 한동안 안 느끼던 다크 한 감정들이 좀 몰려왔다. 이게 뭔가 속으로 고민을 했다. 먹어야 하는 약들을 쳐다보다가 불쑥 약봉투를 이리저리 뒤집어보았다. 약학정보원에 들어가 처방된 약들을 하나하나 검색해서 알아보았다. 약 정보를 찾아보니 우울감이 더 치솟는 이 이율배반감이라니. 항우울제가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순간, 살짝 발끈하는 마음이 치솟았는데, 이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 일에 감정을 불쑥 내세우지 않을 텐데 발끈하다니 약이 필요한 상황이 맞구나. 검진 갔을 때 선생님께도 그 얘기를 했다. 의외로 그 약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가 몰려오면 요리로 달랬다.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이 즐거웠다. 내게는 부엌이 실험실인 셈이었다. 너무 바빠서 요리를 못하는 상황이 되면 스트레스를 달래지 못해 더 힘들었었다. 생각해 보니 요리를 하지 않는 기간이 늘어나서 우울감이 더욱 치솟기도 했던 것 같다. 내 몸인데, 내 마음껏 움직여서는 안 되는 상황인 것이 답답했던 것이다. 좀 움직임을 키워도 되는 시점이 되자마자 손에 잡힌 것이 사골이다. 곰탕을 끓이는 것은 엄청난 스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다림이 완성해 주는 요리다. 그래서 크게 몸을 쓰지 않아도 된다. 잔재주를 부릴 필요도 없다.
사골이 달여져서 물이 반쯤으로 줄었을 때, 사골뼈와 국물을 분리하고 다시 물을 넣어 끓이면서 오후에 사 온 고기도 함께 익혔다. 오래 익혀 부드러워진 사태살을 따뜻할 때 썰어서 아이에게 주었다. 밤이지만 반색을 하며 행복한 얼굴로 먹는다. 내가 저 얼굴이 보고 싶었지. 세 번째 사골을 고아낼 준비를 하고 인덕션 타이머를 맞추었다. 밤새 보글보글 끓어서 아침이면 완성되어 있겠지. 중간중간 걷어낸 기름들을 아침에 마저 걷어내면 깔끔한 사골곰탕을 먹을 수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