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by 물빛

위스키 브랜드 중에 대만의 아쿠아비태(Aqua Vitae) 셀렉션이라는 것이 있다. 아쿠아비태는 독립 병입자인 위스키브랜드로서 라틴어로 '생명의 물'이라는 뜻이다. 증류소를 따로 가진 업체는 아니어서 좋은 증류소의 위스키를 골라서 새로운 디자인의 패키징을 통해 판매를 하는 브랜드이다.


작년 봄 아이의 집을 준비하러 일본에 함께 들어갔었다. 집 계약을 끝내고 입주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어서 한동안 호텔생활을 했어야 했다. 그러다 거리에 수많은 리커샵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리커샵은 거의 마트와 흡사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술 종류가 엄청나게 많을 뿐, 쌀부터 시작해서 각종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생활용품까지 갖춘 곳도 여럿 있었다. 그중 술과 관련한 것들만 판매하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귀한 술 종류도 많았고, 처음 보는 것들도 많이 있었다. 더욱 특이한 것은 병째 판매하는 대신 100ml씩 소분해서 판매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취향을 알기 전에 여러 종류를 맛보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쿠아비태는 그곳에서 처음 만난 브랜드이다. 셀렉션은 매년 새로 구성하는데, 패키지가 정말 이쁘다. 유명한 글렌알라키나 글렌모레이 같은 것도 병입 되어 있었지만, 우리 눈에 띈 것은 절기시리즈였다. 입춘, 추분, 동지. 여름 관련한 절기는 팔린 것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절기셀렉션에는 8개로 구성되어 있고, 절기에 맞추어 위스키가 출시된다고 한다. 이 절기 시리즈는 라벨디자인이 예쁘기도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물고기가 모티브이다. 그래서 담겨있는 술 종류에 관계 없이 아이가 눈을 떼지 못하고 보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입춘은 녹은 얼음과 물고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꼬리에서 몸통으로 갈수록 차가운 색에서 따뜻한 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아름다웠다. 입춘은 토민토울 15년 산으로 스코틀랜드의 토민토울이라는 증류소에서 제조되었고, 2006년 증류하고, 2021년 병입 한 제품이다.


입춘은 봄의 시작을 상징하는 날이다. 이 날 이후로 추위에 꽁꽁 얼었던 세상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새싹이 돋을 준비를 한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관문인 셈이다. 3월 말이었고, 아이는 곧 입학식을 하고 대학생이 될 참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생활하는 시작점. 게다가 2006년생인 아이의 생일은 4월이다. 처음으로 생일에 아이와 함께 지내지 못하는 시간이 올 것이었다. 술의 가격은 워낙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이 브랜드는 아이에게는 상당히 고가의 술이라 아이는 선뜻 사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한참 진귀한 술들을 쳐다보고 있다가, 아이에게 말했다.

"곧 생일인데, 엄마가 입춘은 생일 선물로 사줄까?"

아이는 반색을 하며

"그럼 너무 좋죠." 하고 싱긋 웃었다.


4월이 되어 아이의 생일이 되는 밤. 내가 수업 듣느라 정신없던 중에 12시가 조금 지나자 "엄마 뭐해요?" 라며 전화가 왔다. 아이는 아껴두던 술을 땄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다. 큰아이는 12:07에 태어났다. 아이는 그것까지 기억해서 시간 맞추어 연락해 온 것이었다.

"생일 축하해."

"고맙습니다."

"엄마가 힘들게 낳았는데, 엄청 고맙지?"

"네."

엄마는 수업 들어야 한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었는데, 폰에 몇 년 전의 아이 사진이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그 사진은 아이가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이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맛에 대한 의견을 보내왔다. 아이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특징이나 맛 등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성인이 되는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우리는 입춘과 함께 지나 보냈다. 유난히 날씨가 이상하게 추워서 4월에도 눈이 내리던 그곳에, 진짜 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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