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하기 또는 기록 세우기
극장에는 수많은 영화들이 상영되지만, 애니메이션은 상영관이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은 디즈니 시리즈나 지브리 시리즈가 아니라면 상영관에 걸리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큰 아이가 학교에 대한 선택을 결정하던 시점에 일반인에게는 낯설 수도 있지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단비 같은 작품 하나가 개봉했다.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한국에 정식상영 된다는 것이었다. 대형 멀티플렉스가 많아졌지만, 크게 이름난 작품은 아니어서 상영하는 지점이 몇 개 없었다. 개봉하는 극장에서도 상영관은 단관이고 상영시간도 하루에 오전 한 타임, 오후 한 타임 두 차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두 형제가 주말을 맞아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고 왔다. 사실 아이들이 영화를 볼 때면 장르가 무엇이든 같이 다녔었다.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극장나들이를 삼갔더니, 나는 대형스크린으로 화면을 보는 것은 즐거운데 비해, 큰 소리를 듣는 것이 좀 힘들어졌다. 둘 다 청소년이 되고는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둘이 보내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게도 쉬는 시간이 되어 서로 좋은 것을 알게 된 참이었다. 나는 극장 근처 서점에 들렀다가 모처럼 혼자 카페에서 쉬고 있었더니 둘 다 흥분해서 달려왔다. 돌돌 만 포스터를 기념품으로 받아 들고서 엄마도 꼭 봐야 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큰 아이는 좀 고민을 하더니 시시때때로 평일 낮 시간을 활용해서 같은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갈 때마다 다른 굿즈를 준다는 명목으로 가서 엽서나 포토카드를 받아왔다. 주말에는 작은 아이도 꼬드겨서 함께 가길래 대체 뭘까 싶었다. 그러더니 언제 막을 내릴지 모른다며, 틈만 나면 가서 보고 오는 것이었다. 하아! 이 아인 정말 뭘까?
그러던 어느 날 이야기 하더라.
"엄마 제가 이번 상영 시즌에 제일 많이 봤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
"커뮤에서 집계를 확인해 볼 수 있거든요."
그랬다. 이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관심이 있는 것은 보고 또 보고, 파고 또 파기를 계속했다. 지치지도 않고 혼자서 계속했다. 배우고 싶은 노래는"엄마 불러주세요", "들려주세요"를 백번이고 천 번이고 반복한 한 후에 어느 날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다. 어중간하게 틀리게 부르며 멋적어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나오는 노래를 듣고 무슨 영화 무슨 장면에 나오는 곡이라는 얘기를 한다는 건 예사였다. 몰입하기. 그래서 중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게임을 하고 랭커가 되었었구나.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아이가 기대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성적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숫자로 서열이 나온다는 건 아름답잖아요. 그럼 더더욱 도전하고 싶어 지니까요."
그래서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고 석차가 나오지 않아서 실망했었다. 어차피 다 계산할 텐데, 숨기면 뭐 하냐며.
그래. 이 아이의 성향이 그랬다. 다행이다. 무엇이든 그렇게 몰입하고, 반복하고, 자기만의 기쁨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니까. 나는 죽어있는 것 같다던 아이의 그 열정과 시간을 끄집어내고 싶었던 거였다. 이제 괜찮아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