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렇게 하기로 한 거지

다르게 선택한 길 … 너의 결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by 물빛

"엄마, 아무래도 학교를 그만두는 게 낫겠어요."

학원을 다닌 지 한 달 만에 아이는 자퇴의사를 표명했다.


할아버지와의 전쟁 후에도 아이는 나름으로는 생활을 제대로 영위해 보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혼자 학습하던 과목에 대해 과외선생님을 요청하기도 했고,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필요하면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상담실도 연결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이는 새로운 타인과의 관계에는 선을 그었다. 상황을 명확히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엄마와 이야기하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명확하게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생활에 무기력함이 더해가고 있었고 본인이 알 수 없어서 못 견뎌했다.


아이의 진로는 지속적으로 이과성향이었다. 목표와 방향이 확고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았다. 여름 방학을 시작하면서 약속을 했다. 본인의 목표를 위해서 성적이 부족한 과목에 대해 스스로 노력을 해보겠다고 했다. 고등학교의 여름방학은 고작 3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시간을 들이는 만큼, 원하는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답답한 것은 본인이겠지만, 지켜보는 나도 답답하고 안타까운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도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그 과목에 대해 아무런 의욕이 없다는 것이었다.

"진로를 바꿔보는 건 어때? 어차피 공대를 가려던 건 아니잖아.

엄마는 네가 미술을 해도 좋을 것 같아. 너는 그림을 계속 그려왔잖아."

"어! 엄마가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실은 저도 미술을 하는 게 어떨지 말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네가 정말 원한다면 나중에 어반디자인 쪽으로 대학원 진학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그래도 되면 전 너무 좋죠."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아이는 살아나기 시작했다. 학교생활과 병행해야 하니 주말반만 다니는 데도 신이 났다. 오랜 지인인 미술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학원에서는 아이의 특성을 반영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서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입시학원이긴 했는데, 입시미술을 하진 않는 독특한 곳이었다. 주말 이틀을 학원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품평회를 하는데 오롯이 다 쓰고 나면 지칠 법도 한데, 아이는 점점 더 생기가 차올랐다. 겨우 한 달을 다니고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는 어떻게 설득할 거야?"

"그게 고민인데요.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생각해.

참고로 아빠는 많은 보고를 받아. 어떤 보고가 인상 깊고 억셉하고싶을까?"

아이는 며칠 고민을 하더니 짧은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준비하고, 아빠와 화상통화 신청을 했다. 아이의 자퇴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학교에서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 대신 집에서 수능공부를 알차게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1학년에 자퇴할 경우, 또래보다 1년 먼저 수능에 응시할 수 있어서 대입을 1년 먼저 하거나, 재수하더라도 1년을 벌게 된다. 대학을 갈 것이므로, 수능은 반드시 본다는 것이 조건이다.

아이의 PT를 받은 남편이 작게 한숨을 쉬며 연락을 해왔다.

"쟤가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마음을 단단히 먹은 거지?"

"그렇지. 자퇴 시기, 검정고시 일정, 수시, 정시 상황 다 확인해본 거야."

당연히 부모인 우리도 불안하고 두려웠다. 우리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며, 다른 길로 가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벽과 편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이의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계속 울리던 말. '엄마 죽어있는 것 같아요. 엄마 죽어있는 것 같아요. 엄마 죽어있는 것 같아요... ' 그곳에 두는 게 정말 맞는 것일까? 그것만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은 학교 차례였다. 자퇴원은 작성했고, 제출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학교에는 절차가 있다. 일반적으로 자퇴원을 내면 숙려기간이 1-2주 정도 주어진다. 그 기간 동안 학교를 다니며 다시금 잘 생각해 보라는 의미이다. 아이가 제출하러 갔을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단다.

"너는 그렇게 하기로 한 거지?"

"네."

선생님은 1주간의 숙려기간이 필요하니, 그동안 학교 생활을 잘 정리하라고만 하셨다. 아이는 다시 입학 초기 때인 양 기쁘게 학교를 다녔다. 친하게 지냈던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숙려기간이 지나면, 학부모 면담을 한다. 담임선생님은 아이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좋은 말씀만 해주셨다. 함께 일 년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는 얼굴이셨지만, 아이의 성격을 정말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애써 웃어주시는 선생님과 아이를 함께 사진에 담아왔다. 하늘이 너무나도 푸르고 높은 가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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