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 전쟁. 새로운 길의 시작
"엄마. 학교에 있으면 죽어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고작 두 달 남짓 밖에 지나지 않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주말에 친구들과 모여 요리를 해먹고 신나게 게임을 하는 녀석 치고는 너무 침잠한 말이었다. 몇 주간 아이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는 참이긴 했지만, 생각보다도 너무 깊이 동굴을 파고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부모님, 아이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신다. 지금도 여전히. 특히 외할아버지는 이조 시대분이라고 농을 할 만큼 가부장적이고, 자기 뜻을 중시하며 살아오신 분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직후, 곧바로 담배를 끊으셨다. 첫 손주에게 해로울까 봐서였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며 놀아주셨고, 아이가 물고기를 좋아하니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물고기만 보이면 높이 안고서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네가 좋은 것으로 해라." 다른 가족의 의견은 뒷전이었다. 아이가 최우선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어른들은 이해하시면서도 내심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예전의 좋았던 추억들을 계속 떠올리시며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 하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궁금해 하시기도 했다. 만나는 날이면 미루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지칠 줄 모르고 말씀을 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대신 좋은 이야기만 나누면 좋았으련만...
큰 아이는 학교에서 열심히 생활하려고 노력을 하고 잘 적응을 하던 참이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더 정제된 습관을 가지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서 참 보기 좋았다. 학교에서 생기는 불만들을 종종 이야기하지만, 별 일 아닌 듯 그럴 수도 있다고 넘기곤 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과의 교우관계에서 오는 문제는 아니어서 크게 신경쓸 것은 아니었다. 1학년이지만 학생 뿐만 아니라 학부모 대상으로도 수시로 진학 지도가 이루어졌다. 입시형태와 교육과정이 해마다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중학생 때부터 생각해오던 진로가 있었고,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관심이 있으면 혼자서 이것저것 찾아서 알아보는 아이여서 매일 일상적인 대화로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딱 아이의 생일날이 마침 일요일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단골 가게에서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다. 어른들은 모처럼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에 신나서 달려오셨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장님이 준비해주신 아이스크림케이크에 초를 꽂아 촛불 불고 소원도 빌면서 기쁜 마무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다말고 역정을 내며 일어나 나가시기 전까지는. 하필 손주가 고등학생이라고 주제를 입시로 잡으시고, 학력고사 세대인 나도 하지 않은 3당 4락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뭐 그것까지는 괜찮다. 그만큼 덜 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니까 아이도 충분히 이해했다. 이전에도 하셨던 말씀이었다. 현 입시제도의 형태를 전혀 모르시는 상태로 무조건 시험만 잘 보면 된다는 식의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하시니 아이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어떤 설명도 닿지 않는다는 답답함과 무력감. 아이는 "할아버지, 제발 입시에 대해서는 그만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손주의 그 말에 어떻게 할아버지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대노하시며 일어나 나가버리셨다.
기뻐야 할 생일날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어른이 셋, 청소년이 둘 있는 자리에서 칠십 대 노인과 십대 청소년이 대화를 하다가 노인이 화를 내고 일어서는 일이 발생했다. 청소년이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고, 비속어를 쓴 것은 아니며, 나쁜 행동은 더더욱 한 것이 없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드신 와인이 소화가 되어 알콜이 좀 분해가 되면 진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음 날 돌아온 것은 엄마의 전화였다.
"큰 애한테 할아버지께 사과전화 드리라고 해라."
"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걔가 사과를 해요?"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셨다."
"아니, 왜죠? 아버지가 말도 안되는 말을 계속 하셨잖아요. 우린 그거 계속 듣느라고 힘들었는데요."
"할아버지한테 말도 하지 말라고 하고, 삿대질도 했다고. 버르장머리 없다고 난리다."
"......."
순식간에 자신의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는 아이가 세상을 모르고 예의도 모르는 애가 되었다.
잠시 고민했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부장적이었던 아빠가 무언가 마음에 안들어 우길 때면, 아무 잘못 없는 엄마나 우리 남매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면 일장 훈계를 듣고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 때가 떠올라 화가 치밀어올랐다. 내 아이까지 그렇게 등 떠밀어 아무 의미없는 사과를 하는 부당하고 억울한 상황으로 몰아넣으라고? 그렇게 아이를 서서히 무력하고 고통스럽게 만들라고? 나는 그럴수는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아이가 잘못한 것이 없어서 사과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태연하게 아이가 삿대질했다는데 잘못한 게 아니냐 하기에 엄마는 곁에 있어놓고도 어찌 그러시냐고 반발했다. 모른척 하시지 말라고. 나는 내 아이를 지켜주어야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식으로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아빠는 엄마가 책임지시라고도 했다. 한참동안 부모님과 전쟁이 지속되었다. 나는 완전히 나쁜 X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사무실에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아빠는 나를 보고서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저녁 시간이 되어 내가 운동을 나설 시간이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회유했다가 욕을 했다가 사람을 잡아먹을 듯 흔들어댔다.
아이는 집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전처럼 이야기도 곧잘 했다. 시간을 나누어 수행과제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틈틈히 했다. 다만, 전처럼 학교에 애써 일찍 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활력이 떨어지고는 있었고, 학교에서는 주로 책을 읽는다고 했다. 여름 방학이 되었을 때 받은 학교 신문에 가장 많이 도서대출을 한 친구로 기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