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은 대체공휴일 덕분에 예년보다 하루 늦게 시작했다. 내게는 그 하루의 차이가 묘하게도 여러 가지 시작을 겹쳐 가져왔다.
전날 새벽, 큰아이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삼 주 동안 이어진 숨 가쁜 일정이 끝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열이 치솟았다. 봄의 열병은 매년 치러오는 일상이지만, 이번만큼 여러 마음이 교차한 적이 있었을까 싶다. 기온이 꽤 많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세찬 바람이 일어 작은 아이의 새 학기 시작에 동행해 주었다. 우리 동네는 바닷가의 고층빌딩 숲이라 다른 곳보다도 바람이 거세다. 더불어 두 달 전 신청해 둔 자격시험이 하나 있었다.
겨울에 새로 시작한 약은 며칠간 무척 졸리고 무기력감을 가져온다.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받은 약도 마찬가지다. 시험 전에 투여하는 건 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 과감히 이번 한 번은 패스하도록 하자.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면, 불안한 법이다. 큰 아이와 지내는 동안, 일상이 많이 흐트러져서 예정만큼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하루에 하나 기출을 살펴보기로 결심했지만, 그것도 겨우 해낸 터라 조마조마했다. 시험장소도 처음 가는 곳이라, 한 시간 반 전에 미리 갔다. 위치를 확인한 후에 근처 카페라도 가서 좀 더 공부를 해야지. 최근에 새로 생겼다는 시험장은 지하철 역사 내에 있었다.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평소 잘 이용하지 않던 역이라 잠시 길을 헤맸다. 게다가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를 보고서 찾아갔더니 테이크아웃전문점이어서, 계단을 여러 번 오르내리느라 이미 진이 빠졌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 겨우 자리를 잡고서 안정을 위해 카모마일 차를 주문했다. 너무 뜨거워 호호 불어가며 마셨지만, 반도 못 마신 채 시험장으로 향해야 했다. 시험장에서는 친절하지만, 절제되고 단호한 시험감독관들이 오가고, 시험을 시작했다. CBT(Computer Based Test) 방식이라 시험 종료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점수와 합격여부를 알 수 있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 시작은 괜찮으려나 보다. 1년간 준비해 온 시험인데, 앞으로 있을 실기시험을 준비하면 된다. 이 시험결과가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변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그러면 어때.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딛는 것을 해냈다.
이제 병원에 가 볼까. 지난주에 축농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생각보다 코 상태는 좋아졌다고 하고, 기침이 심해지고 열도 나는 상황이라 기관지염이라고 했다.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낫지 않으면, 천식일 수도 있으니 폐기능 검사를 하자고 했다. 아침에 미루어 둔 약과 새로 처방받은 이비인후과 약을 복용하고 누웠다. 하루치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린 기분이었다. 작은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만 좀 쉬자는 건 혼자만의 바람이었다. 가물거리는 눈을 겨우 뜨고 버티고 있는데, 엄마가 급히 달려오셨다. 얼굴이 잔뜩 들떠 있었다.
"큰 애가 도쿄에서 전화를 했는데 말이야. 사는 곳에 우리가 가도 괜찮겠대. 아버지가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셨어. 얼른 일정 잡아야겠다."
"엄마, 저 시험도 치르고 약 먹어서 너무 졸린데요, 내일 하면 안 될까요?"
"아버지 마음 급한 거 알잖아."
흐음.
사실 흥분하실 만도 했다. 얼마 전 제안한 엄마의 딜이 성공해서,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뿌듯해하셨다. 아이가 반쯤은 마음을 열었다는 이야기니까. 입시를 준비하는 몇 년 간 아이는 철저히 마음을 닫았었다. 시간에는 진한 응어리마저 옅어지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단지 그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사람에 따라서, 사건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내가 몇 년간 어른들께 드린 말씀은 "기다리세요." 밖에 없었다. 잘잘못을 떠나 어른의 태도가 달라지기는 쉽지 않다. 이조시대 사고방식에 가까운 어른들은 더욱 그러하다. 별 수 있나. 아이가 성장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관계를 되돌릴 문 앞에 한 발짝 다가섰다. 그 시작점이 무엇인지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시간이 아이에게는 분노와 미움의 감정을 희석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든 한 발 내디뎠다는 것이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