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 새 생명의 정기

by 물빛

봄을 느끼는 것은 식탁에서부터다. 아직 바람은 거센데도 마트에는 봄의 정령들이 등장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제철의 경계가 흐려졌고, 이제는 사계절 내내 원하는 재료를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봄나물만큼은 때를 놓치면 신선한 맛과 향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건나물이나 냉동나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바로 그 봄의 맛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산지직송으로 봄나물을 구매한다.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신선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양이 제법 많다. 엄마와 나누어 먹으면 되니,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


한식에는 얼마나 다양한 나물이 존재하는가. 된장, 고추장, 간장 같은 장으로 무친 나물에는 깊고 아늑한 맛이 깃든다. 소금과 참기름만으로 무친 나물은 또 얼마나 슴슴하고 향긋한지. 고춧가루와 식초를 더해 상큼하게 무치면 입맛을 돋우는 별미가 된다. 요즘 유행하는 봄동비빔밥의 봄동무침처럼, 겉절이 형식의 나물도 빼놓을 수 없다. 차례상에도 제사상에도 그 기름지고 고소한 고기와 전을 잔뜩 차려놓고서도 밥과 함께 나물을 꼭 올린다. 생일상은 또 어떤가. 적어도 삼색나물만큼은 빠지지 않게 차리려고 애쓰지 않는가.


그런데도 문제는 남는다. 아들만 둘, 아니 남편까지 '아들 셋'인 우리 집에서는 나물을 먹이려면 제법 머리를 굴려야 한다. 갖은양념에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도 배식하듯 개인 접시에 따로 담아주지 않으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생채 샐러드나 생야채는 잘 먹으면서도 말이다. 각자 좋아하는 재료와 조리법도 제각각이다. 달래를 좋아하는 큰 아이는 솥밥에 달래장을 얹어 먹거나 재래김과 함께 주면 잘 먹지만, 작은 아이는 달래를 좋아하지 않아서 난감해한다. 제일 큰 아들은 편식이 가장 심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조차도 "나는 토마토 싫어, 오이 싫어." 하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쩌겠나. 먹이려면 맞춤형으로 제작해야지.


그래서 떠올린 것이 냉이김밥과 냉이 파스타이다. 요즘은 조리법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편하다. 내 상황에 맞게 조금만 변형하면 무궁무진한 요리가 탄생한다. 냉이는 뿌리가 빨리 익지 않고 질길 수 있으니,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준비한다. 잘게 쫑쫑 썰어서 갓 지은 밥에 간을 해서 냉이를 섞은 뒤, 아이가 좋아하는 계란지단과 당근라페를 듬뿍 넣어서 돌돌 만다. 냉이 파스타는 알리오 올리오에 냉이를 더한 방식이다. 단백질도 필요하니 새우구이를 곁들였다. 이렇게라도 잘 먹어주면, 그저 예쁘고 고맙다.


냉이김밥과 냉이파스타


봄나물은 다른 계절의 것들과 달라, 굳이 먹이고 싶어진다. 봄에 수확되니 이제 막 자라난 새싹처럼 보이지만, 실은 겨울을 견디고 얼었던 땅이 풀리며 비로소 올라온 것들이다. 춥고 힘든 시간을 홀로 버텨내고 뿌리내린 끝에 움튼, 작지만 강인한 생명. 그래서인지 쌉싸래한 맛이 더 깊고 향도 짙다. 그 생동감을 내 가족이 오롯이 느끼게 해주고 싶다. 아주 짧은 순간에만 허락되는 귀한 자연의 선물을.


퇴근길 집 앞 현관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참두릅이다.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튀겨야 제 맛이다. 처음 채취해서 보내준 야들야들하고 연한 두릅을 바삭하게 튀겨내고, 평소에 식감을 좋아하지 않던 가지도 함께 곁들여 파티를 해도 좋을 테다. 내일의 메뉴는 너로 정했다. 봄은, 이렇게 먹으며 온몸으로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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