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기억을 머금은 것들

by 한도톰

가만 살펴보면, 봄나물은 풋내를 뽐냈다.


그 풋내는 완전히 싹을 틔운 잎의 향도 아니며, 그렇다고 땅 내음을 오래 품은 묵은내도 아니었다.


싱그러우나 날 것의 흙내음을 품어 어디엔가 묵직한, 다 익지는 않았으나 내가 봄나물이오-하고 표현될 만큼의 색을 갖춘 푸르름. 그것은 사람들에게 이 나물은 어떠한 맛을 자랑할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때론 어느 땅에서 자랐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언 땅을 밀어내느라 고생했을 너는 참 다채롭고도 설레는 향을 내는구나, 하고 가만히 코에 맞닿아보기도 한다. 나물의 언어와 나의 후각이 만나는 순간이다. 대화라면, 대화이다.


생각은 자연스레 일터로 연결된다. 내담자의 언어와 나의 귀가 만나는 순간은 봄나물의 내음을 느끼는 것과 닯아 있다. 깊숙이 감춰놓은 당신의 감정이, 차갑고 딱딱한 환경에도 행복해지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싹을 삐죽, 보여줄 때 그런 애씀이, 그러한 정성이, 그러한 용기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된다.


땅 밑에 저며든 불쾌한 감정들, 그러니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 혹은 스스로도 납득되기 어려운 마음들. 충분히 묻어둘 수 있었으나 그 내음마저 자신의 일부로 수용하는 것. 나물이 땅의 시간을 머금고 올라오듯, 사람의 마음에도 지나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주한다. 보이는 싹이 아니라, 그들의 '땅의 기억'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땅의 향은 결코 매캐하지 않다. 오히려 궁금증을 자아내며, 정체성이 도드라지기에 충분한 향이다. 축축하고 어둡다고 하여 그 기억을 지울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싹을 틔울 양분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물이 어떠한 것을 머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특유의 향, 그리고 쓴맛까지 포함하여 비로소 나물이 되는 것처럼, 어쩌면 어떤 감정들은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잘 자라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것들, 그럼에도 스스로 올라온 것들.


그래서 가끔 당신들과 마주하는 마음들을 나물처럼 떠올린다. 조금은 투박하고, 어딘가 씁쓸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것들. 그것이 당신을 살게 한 양분이며, 당신을 당신처럼 온전하게 만들어온 내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흙의 풋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푸른 싹이었던 것처럼 내보이기엔 우리는 모두 봄나물임을 아니까, 아직 다 익지 않은 채로도 충분히 봄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향을 조금 더 오래 맡아보기로 한다. 쉽게 규정하지 않고, 서둘러 덜어내지도 않은 채, 그저 당신이 어떤 계절을 지나왔는지 가만히 짐작해보는 일로. 지나온 시간을 고스란히 느끼는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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