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시간뿐이라고 한다. 하루 24시간을 살아간다는 의미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람이 느끼는 시간은 각자에게 많이 다르다. 상대적이며 흐름의 속도도 다르고, 심지어 순서가 달라지기도 한다.
작년 4월 한 업체가 주관하는 에세이캠프에 참여했다. 매일 아침 주제를 보내주면, 그날 자정까지 에세이를 작성해서 업로드하면 된다. 매일 작성하는데, 80% 이상 달성하면 책자로 만들어서 보내준다. 비매품이지만, 내 글이 하나의 완성품으로 묶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서 약간의 물리적 압력과 긴장감을 더한 방법이기도 했다. 아침에 문자를 받고 주제어를 보면 내 시간은 과거로 돌아갈 때가 많았다. 십 년 전 이십 년 전, 심지어 사십 년 이전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과거의 시간 어딘가에서 내 기억은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서서히 흘렀다. 그곳에서 슬프고 안타까웠던 기억,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어쩔 줄 몰라하는 현재의 나를 달래주어야만 했다. 순식간에 수십 년을 뛰어넘은 듯한 시간의 간격이 무색하게 나는 그 시절의 아이가 되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현실 속으로 돌아와 두 아이의 엄마로, 딸로, 아내로, 직장인으로도 살아내어야 했다.
양자물리학 속의 슈뢰딩거 고양이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그런 문제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중첩된 계에 존재하지만,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상태는 하나의 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그렇지만 인생은 여러 계에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시간의 흐름을 타고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게 문제다. 그 언젠가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빛바랜 만큼 쌓여버려서 털어도 털어도 생채기가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매일 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가끔 빼먹기도 했지만, 처음 책자가 완성되어 왔을 때, 손에 잡을 수 있는 완성품에 정말 오랜만에 뿌듯했다. 어쩌면 오래전 논문을 마쳤을 때보다도 더. 살아있는 자신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에 자존감이 상실했던 시기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 후로 시즌별로 한 번씩 더 해서 총 4번을 진행했다. 네 계절을 돌아본 셈이다. 글을 쓴 시간으로만 보면 1년이 채 되지 않지만, 마지막 글을 쓸 즈음의 나는 대부분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내 시간은 지금과 가까운 미래를 그리며 흘러갔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과 새로운 일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시간을 역행하며 잠시 멈추었던 순간에 일도 사람도 가지치기를 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가짐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전과 다른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일에 집중한다는 것은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직은 사람들 속에서 체력이 달리긴 하지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