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의 하나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어릴 때면 누군가 칭찬을 하거나 선물을 주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도록 교육한다. 우리말 표현인 ‘고맙습니다’도 비슷한 경우에 이용한다. 어릴 때 친구 따라 다녔던 교회에서는 하나하나 열거하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솔직히 그런 기도를 하거나 들으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습관처럼 쓰지만, 인사치레로서의 말 뿐인 걸까. 오히려 인간을 미약한 존재로만 여기는 듯해서 조금 공허한 느낌마저 들었었다.
세상살이 무엇 하나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어릴 때는 잘 몰랐다.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봐 왔고, 원하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의 호의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예부터 '착하게 살면', '마음을 곱게 쓰면' 등등의 말로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교육을 해왔지만, 인간관계는 일대일대응도 아니고 무조건적으로 호의에 호의로 답하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얽히고 얽힌 사회생활의 여러 문제점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라고 한다.
아이를 낳고 지내보니 생활의 모든 것이 하나하나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파도 울기만 했고, 엄마가 젖을 물리거나 누군가 분유를 타먹여야 했다. 조금 크면서는 변 가리는 법도 인내를 갖고 가르쳐야 했다. 양치하는 것도 수저를 사용하는 것도 글을 읽고 쓰는 것도 하나하나 다 어느 누군가의 관심과 가르침을 통해서 익히고 터득하고 생활화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되고서야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진심으로 느껴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감사함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책에서 배우던 인간의 연약함에 따른 교육기간이 길다는 것은 이론에 불과했다. 현실에서의 육아는 전장을 방불케 하고, 매일매일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점점 더 소통이 어렵고 삭막한 사회라고들 말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고 또한 효율적이지도 않아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대체하는 시대다. 불특정다수가 서로 얼굴 마주하고 눈을 쳐다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주문한 음료나 음식을 받아 드는 짧은 순간,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 그 말을 듣는 상대도 '순간' 긴장을 푸는 것이 느껴진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상대를 보며 살짝 웃는다. 고단한 삶에서 서로 감사를 주고받으며 찰나의 위안을 얻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도 따라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한다. 언젠가는 아이도 마음 깊이 그 의미를 느끼고 하게 되겠지. 괜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