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맺은 인연... 실친이 되어도 괜찮아
두문불출(杜門不出) : 문을 닫고 나가지 않다. 집에 은거하면서 사회에 나가지 않다.
내 성향이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수술을 한 이후로는 더욱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냈다.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으로도. 소진된 체력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쳐있었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케어하는 것도 벅찼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그럴 엄두도 나지 않던 시간이 꽤 길었다. 안부를 전하는 극소수의 친구들이 있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었다. 어쩌면 나도 알고는 있었다. 좀체 웃지 못한 지도 한참 되었다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인연이 있다. 이십여 년 전, 당시 남자친구이던 남편과 함께 활동하던 동호회가 있었다. 세 친구가 오픈한 맥 동호회였고, 각각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회원들도 세계 각지에 거주했다. 덕분에 지금보다 훨씬 정보가 닫혀있던 시절임에도 다양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었다. 그 인연 중 한 언니와 서로의 대소사에 연락을 하고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이 언니가 신기한 게 내가 정말 힘이 들거나 지쳐있을 때면 한 번씩 연락을 해오곤 했다. 병원에 입원하던 날도 언니에게만큼은 이야기를 했었다. 두문불출하던 때가 이 시기만은 아니었는데, 메신저로 좀 길게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었다. SNS활동을 조금 늘리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늘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크게 와닿았던 것은 아니지만, 실친 위주였던 내 페북세계에 언니의 친구들 중 눈길이 가는 친구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글로 친구가 되는 곳이니 글로 마음이 통해야 했다.
언니의 조언은 놀라웠다. 처음 친구가 된 이는 동갑의 번역을 하는 이였다. 댓글로 대화를 하다 보니 요리하기를 좋아한다거나, 비슷한 시점에 같은 영화를 보았다거나 하는 등의 감성이 잘 맞았다. 하나 둘 친구들이 늘면서 온라인상에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생활에서 보는 한정적인 대상과는 달리 다양한 나이와 직업군의 사람들. 매일매일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로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었다. 마치 어릴 적 친구들 만난 듯이 농담을 하게 되기도 하고, 어느새 친해진 멤버들도 있어서 서로 태그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별명도 생겼다. 그러다 1년쯤 지나자, 첫 번째 친구가 여행차 부산으로 와서 정말 진짜 친구가 되었다. 내가 서울에 가면 또 다른 친구와 함께 같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진짜 친구가 하나 둘 늘어갔다. 워싱턴에서, 상하이에서 또 밀라노에서 한국을 찾은 이들이 부산에 찾아와 주기도 했다. 이들은 진짜 친구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내 표정에 웃음도 찾아주었다.
병원에 정기검진을 갔던 날, 늘 가던 카페가 공사를 해서 새로운 카페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발견한 벽의 무드등에는 '자주 봐요 우리, 정들게'라고 씌어 있었다. 그 문구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결심을 했다. 그리고 상하이에서 온 언니에게 톡을 보냈다. '언니, 우리 O월 O일 분당에서 만날까요? 자주 봐요, 정들게.' 하고. 믿을 수 없겠지만, 그건 내 생에 있어 첫 번째 혼자만의 일탈이었다. 한 번도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다른 지역에 가본 경험이 없었다. 늘 부모님이나 남편, 또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 스스로도 놀라운 결정이었지만, 그 당일여행은 너무나 자유롭고, 즐거웠다. 물론 아이들도 엄마 없는 하루를 아주 잘 보냈다. 그날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생활을 열어준 날이 되었다. 그 후로는 종종 "엄마 쉼이 필요해." 하며 당일이나, 1-2박의 짧은 여행을 하곤 한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오롯이 혼자 보내기도 한다. 내가 나를 보살피는 시간이 정말 필요했었다는 것을 함께해서 좋은 이들을 만나고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