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이대로 괜찮은 거겠지
우리 가족은 야행성이다. 부모가 그러하니 아이들도 자연스레 그렇게 생겨먹었다. 유행처럼 번지던 미라클모닝은 엄두도 내어본 적이 없다. 다만 일할 때는 철저히 시간 맞춰 가야지. 학교도 지각을 겨우 면할 정도로만 다닌다. 어쩌면 학교가 집에서 가까워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도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갔으니 말 다했지. 여하튼 아침 등교시간은 늘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것이 일상이다.
큰 아이가 대뜸 일출을 봐야겠다고 했다. 모두 놀라서 쳐다보았다. 뜬금없이. 그것도 네가? 왜?
자퇴를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달이 바뀌는 날이었다. 일어날 수 있으면 가라고 하고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0분만 걸어가면 바다다. 기상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지 일출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아닌 터였다. 이 녀석은 못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현명하게도(?) 잠을 자지 않는 편을 택했다. 밤을 꼴딱 새우고, 일출 예정 시간 전에 나가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단다. 구름과 해무에 가려 동그랗게 떠오르지는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아서 잘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에 대한 리추얼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평소와 달리 새벽에 혼자 나가 걸으며 그 시간에 나온 사람들도 보고, 앞으로의 일도 정리를 해본 참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동생을 닦달하며 주말부터 매주 등산을 하자고 야심 차게 결의를 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산부터 올라보기로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로 몇 정거장 가면 등산로 입구가 있다. 물론 집에서 걸어서도 갈 수는 있다. 이 녀석들이 초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요즘은 학교 소풍(현장체험학습)도 버스를 대절해서 체험관이나 놀이공원 같은 곳을 가다 보니, 작정하지 않으면 산에 오르는 경험 자체가 쉽지 않다. 나 때는 말 그대로 학교를 등산하듯 다녔고, 소풍 역시 저학년에는 학교 뒷산부터 시작해서 이 산 저 산 다니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들은 간단한 먹거리와 물 정도만 챙기고, 늘 신던 운동화를 신고서 첫 등산길에 올랐다. 친구들까지 꼬드겨서 아침 일찍 같이 가기로 했다면서 서둘러 나섰다. 근처 산이라고 해도 부산에서 높은 산 중 하나라 초행길에 어떤지 마음이 많이 쓰였는데,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무사히 돌아왔다. 대신 저녁을 먹자마자 곯아떨어져서 다음날 아침까지 못 일어났다. 산행 한 번에 쓰러진 체력에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정말 대견했다. 이후로는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평일보다도 일찍 일어나 산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나의 다정하고 친절한 페친들이 산행에 도움이 될 꿀팁들을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그냥 맨몸에 운동화만 신고 그냥 다녔었지만, 발을 다치지 않도록 등산화도 잘 나와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엄청난 등산용품의 세계였다. 동네 뒷산쯤이야라고 생각했지만, 내 페친들은 내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들 인양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라며 자꾸 부추겼다.
결국, 겨울방학을 맞아 친구 중 한 명이 친절히 지리산으로 인도했다. 이미 그 친구가 지리산 자락에서 펜션은 하는 지인을 소개해 준 적이 있어서 다녀온 적이 있었다. 내가 등반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함께 해주신다며 지리산에서 안전한 코스라는 바래봉으로 시작하자셨다. 예정된 날을 앞두고 친구가 정말 미안해하며, 약속이 중복된 것을 본인이 놓쳤었다며 알려오셨다. 함께 등반은 못하지만, 자신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도록 하루 전에 선행등반을 해주기로 하셔서, 그 펜션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리산 스승님이라며 내 아버지뻘 되는 분과 함께 등반을 하고 오셨다. 내 페친과 펜션주인, 스승님은 십여 년 전 지리산을 한 팀으로 다니며 동고동락하던 사이여서 가족만큼 친하다고 하셨다. 게다가 세 분은 각각 열 살 차이셨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장비들 사용법에 대해 꼼꼼하게 알려주시고, 지도 보는 법도 알려주시고, 중요 포인트, 주의점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이른 아침에 장비착용한 것을 확인한 후, 스승님께서 아이들을 바래봉입구에 바래다주셨다. 4시간 정도 예상하고, 나는 아이들 하산 시간에 맞추어 그 지점으로 데리러 가면 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겨울이어도 이전날은 햇살이 좋은 날이었는데, 밤부터 눈이 내렸었다. 이 녀석들은 부산토박이이다. 아빠가 서울에 있으니 눈을 접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눈이 쌓인 산이라 걱정이 좀 되었다. 친구도 약속장소로 떠나고, 나도 일찌감치 바래봉 쪽으로 출발했다.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도 지리산자락은 너무나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가 기다렸는데, 아이들은 지리산 스승님들이 예정한 4시간이 아니라 6시간쯤에서야 내려왔다. 너무 춥고 배고파해서 우선 근처의 카페에서 따뜻한 차와 빵으로 간단히 요기만 하고 얼른 펜션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보여준 눈 덮인 바래봉은 정말 아름답지만, 아이들은 눈바람이 거세서 걷기 힘들었고, 뜨거운 물을 챙기지 않아서 추웠다고 했다. 또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전날 밤 어른들이 우스개 삼아 비료포대를 챙기라고 했었다. 그걸 잊고 안 챙긴 것이 제일 아쉬웠다고 했다. 비료포대 썰매를 탔어야 시간도 절약하고 덜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잘 다녀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야, 얘들아. 나중에 말하기를 바래봉은 눈이 와서 추위가 힘들었지, 길이 넓고 잘 닦여 있어서 등반 자체는 동네 산보다도 훨씬 편했다고 한다.
한 달 후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리산 등반할 계획이 있는데, 아이들이 함께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왔다. 지난번에 같이 등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일정이 둘째 봄방학 중이라 좋은 기회였다. 바래봉은 펜션에서 차를 타고 50분쯤 가야 했는데, 이번에는 펜션 뒷 봉우리였다. 동네산이라면 왠지 좀 더 가벼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이들은 기대에 가득 찼다. 친구가 혼자 아이들을 지휘하여 올라가기로 했다. 나는 친구가 지정해 준 산행 들머리 근처까지 차량으로 이동해서 내려주었다. 자신만만한 친구를 아이들은 대장님으로 모시고 신나게 출발했다. 원래 일정은 오후 3-4시쯤 하산하고, 부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실 내 일정이 계속 빠듯했었고, 장거리 운전에 엄청 피곤했었다. 그런데 왜인지 좀 자고 싶은 마음에도 잠이 들지 않았다. 돌아가려면 자야만 했음에도. 틈틈이 아이들 연락이 왔고, 정상에 다다라간다는 것도 확인하고서야 안심했다. 점심도 먹었는데, 예정보다 늦게 출발을 해서 딜레이가 있었고, 5시경에 하산이라는 대장님의 연락이 있고서야 살포시 잠이 들었다. 5시에 펜션주인이 돌아오셔서 아직 하산하지 않았음에 놀라셨다. 곧 해가 떨어질 거라 염려하셨는데, 6시가 다가오자 망설이시더니 차를 가지고 어느샌가 출발하셨다. 둘째의 폰으로 연락이 오는데, 연결이 잘 안 되고, 큰 아이가 아프다고 했다. 대장님이 길 찾으러 가시고 아이들은 멈춘 상태인 모양이었다. 잠시 후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스승님, 펜션주인, 아이들, 부모님, 남편.
일단 아이는 대장님이 오실 거라 믿으라고 진정시켰다. 큰 아이는 아프면 타이레놀 먹이고 잠들지 않게 깨워두라고 일렀다. 7시가 넘어도 대장님은 불통. 후우!! 산악구조대, 경찰, 119까지 풀세트로 작동했다. 하산까지 30분 정도 예측했는데, 대장님과 아이들이 상봉하려면 최소 1시간 걸린다. 나는 대장님과 연락이 닿지 않는데, 기관이 움직인다 하니 어리둥절했다. 펜션주인이 나중에서야 대장님과 애들이 상봉한 사실을 알려주셨고, 큰 아이 아프다는 얘기에 스승님이 산악구조대에 신고를 하신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아이들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알고 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아이들은 대장님 따라 하산하고 있다고 했다. 큰 녀석 입이 살아있는 걸 보니 좀 쉬고 다시 살아났구나. 걱정은 그만해도 되겠는데, 그나저나 이 사람들 구조대가 간다니까... 1시간쯤 후에 삐룽거리는 소리와 함께 펜션주인 차가 들어왔다. 뒤이어 경찰차도 들어왔다. 에스코트해 준 것이라고 했다.
대장님은 하산길이 눈으로 쌓여 길이 보이지 않는데, 큰 애가 미끄러져 다리가 아프다고 하니 길을 먼저 찾아야겠다 싶어서 아이들은 쉬고 있으라고 한 것이었다고 했다. 산 속이라 연락이 잘 안 된 것이었고. 하산까지 30분 예측이었으니 왕복해서 아이들까지 데려오려면 1시간 반이 걸린다는 예상이었던 것이다.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애가 아프다고 하니 스승님은 신고를 하신 것이고, 대장님은 본인 생각대로 가능한 한 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하산하신 것이었다. 구조대와 119는 계속 연락을 취하였으나 멀쩡히 하산한 사람들을 보고 당황하였다고 한다. 지친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하루 더 묵고 새벽에 출발하는데 동의했다. 남은 식재료를 탈탈 털어 늦은 저녁을 다 같이 먹었다. 너무너무 긴 오후를 보내고 아이들 재우고 정리를 하는데, 경찰이 다시 등장했다. 아이들이 내 아이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미성년자가 성이 다른 성인과 함께 구조위기에 처했었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불쌍한 대장님 순간 납치범으로 오인받을 뻔했다. 늘 가지고 다니는 가족증명서로 일단락 지었다. 다만 성이 다른 것이 왜 중요한가 했더니, 얼마 전 이 근처 다른 지역에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내게 일어나지 않은 일일지라도 얼마든지 또 언제든지 생길 수도 있는 것이구나. 또 하나 배웠다.
삶은,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정말 마음대로 진행되는 일이 없다. 자의든 타의든.
아이들은 다음 날 낮잠 두 시간 자고서 멀쩡해졌다.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지리산 등산은 두 번 다시 안 할 것 같더니만, 다음 해 봄에 또 노고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