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후지산으로

인생은 영화처럼

by 물빛

국내에서 캠핑경험이 한 번도 없는 생초보가 후지산 캠핑을 계획하는 데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일본 가이드를 오래 하고 있는 친구에게 문의를 했다. 내 사랑스런 친구. 좋은 생각이라며 팀을 꾸리자고 했다. 어느 캠핑장이든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애매하고 아이들과 가니 렌트를 해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후지산에는 남편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하니 계획만 잘 짜면 된다. 일단 작은 아이가 중학생이니 시험일정을 피해야 하고, 남편이 휴가를 내기 용이한 일정이어야 하니 연초는 피하고. 이리저리 고민하다 우리가 정한 날은 4월 말이었다. 친구는 우리 네 식구와 동행할 친구팀으로 네 명을 정해서 휴가일정을 맞추었다. 여러 곳을 가면 좋겠지만, 한정적인 시간 내에서 움직이기는 한 곳을 정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고민하다 야마나시현 모토스코의 고안캠핑장으로 정했다. 유루캠 첫 화에 나오는 곳이기도 하고, 일본의 천 엔 지폐에 그려진 후지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준비 기간은 5개월 정도. 아이들은 체력 단련은 등산으로 이미 시작했고, 모아둔 용돈을 탈탈 털어 캠핑 장비들을 하나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유루캠의 주인공들이 사용한 용품 위주로 고르느라, 만만치 않았다. 이미 단종된 제품은 그 비슷한 디자인과 성능이라는 것으로 골랐다. 덕분에 집에는 1인용 텐트가 두 개 생겼다. 엄마 마음이야 4인용을 사서 하나만 있어도 될 것 같지만, 아이들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다행인 것은 1인용이라 해도 제법 커서 두 사람이 잘 수 있다. 캠핑에 관한 만화이다 보니 아이들은 꼼꼼히 제품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캠핑의 유의사항이나, 산에서의 일기에 대한 정보, 대처법 등을 잘 챙겨보았다.

그러나, 대체 텐트는 어디서 쳐볼 것인가? 단 한 번의 실제 연습도 없이 집 안에서만 펼쳐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실제 상황에서 땅에 고정하고 레인커버를 씌우는 것도 다 해보아야 할 것이었다. 지리산에 다녀온 후로 좀체 시간과 장소를 맞추어 연습해 보기가 쉽지 않아서 고민이다가 둘째는 개학을 했다. 시간은 주말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지리산 대장님이 지리산 사건의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제안을 해왔다. 친구분들과 벚꽃맞이 캠핑을 할 예정인데, 같이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끼리 어설프게 해 보는 것보다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실습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3월 말이 되어 합천으로 떠났다. 아이가 금요일 수업을 마친 후 가야 해서 어둑한 밤에 도착했지만, 뚝딱뚝딱 텐트를 치고 검사를 받고, 유의사항에 대해서도 잘 배웠다. 어른들이 여럿 있으니 지면 상태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로 탄탄하게 고정해야 하는지, 꼼꼼하고 정확하게 알려주셨다. 텐트 치기 실습을 잘 마무리하고서 모닥불을 피워 준비해 간 캠핑 음식들을 조리해 먹었다. 덕분에 다정한 첫 번째 캠핑의 밤을 보냈다.


텐트 치기 연습. 합천 캠핑장


후지산으로 떠날 날은 다가오는데, 남편이 해외출장 건으로 합류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친구는 좀 알아보더니, 내가 일본에서 운전 경험이 없는데, 혼자 운전해서 산에 가는 것은 무리일 거라며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바로 드라이버가 있는 미니버스를 대절하는 것이었다. 7인 모두가 운전에서 해방되니 이동시간 동안 쉴 수도 있고, 차량 두 대를 렌트하고 통행료를 낼 것을 생각하면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우리는 도쿄에 먼저 가 있기로 하고, 친구들은 캠핑 전날 일본으로 가서 만나기로 했다. 한참만에 간 도쿄라 달라진 것도 많았고, 아이들은 도쿄가 처음이었어서 재미있게 돌아다녔다. 물론 만화책과 음반가게, 그리고 프라모델 등 아이들이 원하는 굿즈샵도 포함이다. 우리의 약속 장소는 시부야 스카이. 도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부야 스카이에 올라 해 질 녘을 보내고, 저녁 겸 파티를 했다. 그날이 마침 큰 아이 생일이었다. 친구는 그것까지 기억해서 일부러 긴자를 들러 케이크를 준비해 왔다. 아이의 행복한 얼굴이 마음에 새겨졌다.


큰 아이 생일 파티. 시부야


다음 날 새벽 짐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기사님은 한국인인 데다, 놀랍게도 부산 출신이라 셔서 이동 거리 내내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캠핑을 너무 좋아하시는 분이셔서, 정보도 많이 알려주셨고, 미리 얘기했으면 무거운 짐은 빌려줄 수도 있었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가이드인 친구가 세부 일정을 잘 케어해 주어서, 야마나시현의 유명한 곳인 오시노핫카이, 맛있기로 유명한 작은 마을의 커피숍을 지나 하다카지마 역으로 갔다.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주차장에 내려 보니 그 역사 주변은 온통 유루캠의 성지였다. 만화는 실제 마을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고, 마을 곳곳에 안내가 붙어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일정 맞추어 캠프도 할 수 있었다. 하다카지마 역은 무인역인데, 주인공들이 전차를 기다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생각보다 날이 좀 추워서 핫팩을 사서 약국에 들렀다. 약사분이 친절하게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서 어떤 행사가 있으며, 어떤 것을 하면 좋다고 말씀해 주셨다. 캠핑장에는 작은 관리소에 딸린 매점이 전부라, 슈퍼에 들러 음식들을 샀다. 애초 계획은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아서 완제품으로 준비했다. 슈퍼마켓 역시 유루캠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온 마을이 유루캠과 함께 살아가고 성장하고 있었다.

대절한 미니버스

하다카지마 역. 기차 기다리는 신이 있음

세루바. 슈퍼마켓. 유루캠 친구가 알바한 곳


드디어 고안캠핑장. 주차장과 호숫가가 가까워서 이용하기 편리하다. 다만, 이곳은 자연을 해치지 않는다는 모토로 운영되는 곳이라 전기를 끌어 쓸 수도 없다. 가보니 숙박시설도 있어서 혹시 또 가게 된다면, 그것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서둘러서 집짓기 시작. 비가 오면 호수가 불어나니 호숫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텐트를 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펼쳤지만, 땅이 너무 단단해서 고정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해보다가 핀을 몇 개 부러뜨리고서야 겨우 고정이 되었다. 그 와중에 큰 녀석은 가져온 것들을 하나씩 펼치더니 사진을 찍어댔다. 모토스코를 배경으로 주인공 나데시코와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 그것이 그 녀석의 목표였던 것이다. 저녁을 먹으려고 음식들을 주섬주섬 차리는데, 빗방울이 뜨기 시작했다. 조금 오다 말겠지 싶었는데, 웬걸 빗방울이 점점 굵어졌다. 어쩔 수 없이 타프 안으로 모두 이동해야만 했다. 그래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있게 나누어 먹고, 맥주도 한잔씩 나누고, 팝콘도 튀겨먹었다. 비도 많이 오고 다들 피곤하니 일찍 쉬기로 하고 도구들을 정리하느라 세면장에 오가는 사이에, 우리의 타프에는 야생동물 친구가 다녀갔다. 오소리였다. 처음엔 어랏, 뭔가 착각했나 싶게 음식이 사라졌다 싶었다. 그런데, 우리 중 가장 힘센 친구와 큰 아이가 타프를 지키고 있을 때 대범한 오소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와서 맛있어 보이는 흑당 캔디를 몽땅 가져갔다. 아아. 영화 속 한 장면이 별 건가.

이 한 컷이 이번 캠핑의 목적 : 모두 유루캠 친구들 굿즈임. 텐트, 컵, 가스랜턴, 테이블


분주한 소리에 모두 일찍 일어나야 했다. 밤새 비가 엄청 쏟아졌는데, 친구들 텐트에 비가 스며서 어쩔 수 없이 강제 기상이었다. 우리 텐트는 정말 유. 루. 캠. 덕분에 안전했다. 친구들도 캠핑 경험이 엄청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국내 캠핑만 했던 참이라 날씨가 나쁘면 안 했던 것. 그래서 비 오는 날의 대비가 부족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텐트 안에 깔 방수 패드와 에어매트를 꼭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아이들이 픽해준 물품들을 주문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우리를 지켜준 것이었고, 밤새 비가 두들기던 하룻밤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어릴 적 텐트에서 자는 게 무척 불편하고 아팠던 기억이 남아있다. 학교에서의 각종 수련회마다 텐트를 짊어지고 가서 펼치고 잠을 자면, 힘들고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몸이 배기고 아프고 그랬다. 그래서 캠핑에 관심이 없었던 것인데, 요즘은 대부분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용품들이 많이 나와 있다. 신세계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어떻든 예정보다 일찍 철수를 해야 했다. 옴팡 젖은 용품들은 미리 준비해 간 김장비닐에 싹싹 접어 넣어서 돌돌 묶었다. 잔뜩 기대했던 후지산 풍경은 구름 속에 갇혔다. 그러면 어때. 우린 또 색다른 캠핑을 경험했잖아. 그래도 캠핑장 풍경은 남겨야겠지.

밤새 내린 비로, 후지산의 모습은 구름에 가려 온데간데없음


예정보다 일찍 움직여야 해서,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온천이 여는 시간에 맞추어 들어갔다. 잔뜩 비를 맞은 후에 하는 온천이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도쿄. 도쿄도 종일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캠핑 장비들을 호텔에서 털 수가 없어서 욕실에서 살짝 헹구고 수건으로 닦아서 방에 펼쳐두었다. 내일 비행기를 타려면 말려서 접어 넣어야지. 도쿄에서의 이전 며칠간보다 1박 2일의 후지산 캠핑 일정이 훨씬 체력소모가 많았다. 그래도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는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날이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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