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것인가
둘째 아이는 세심하고 마음이 따뜻하다.
취학 전에 다니던 미술학원에 새로 남녀 쌍둥이인 친구들이 합류한 지 한 달쯤 지난 후였다. 쌍둥이 엄마가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을 제안했다. 흔쾌히 나눈 그 시간에 그 엄마는 둘째에게 아주 고마움을 표현해서 깜짝 놀랐었다. 가족이 모두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온 참이었다. 유치원에 갔더니 두 아이 중 남자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단다. 성격이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은 여자아이는 쉽게 새로운 친구들 무리에 적응을 했는데,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린 남자아이는 따돌림과 놀림을 받았다. 마음에 상처가 생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미술학원에 오게 되었다. 처음 왔던 날, 둘째가 그랬단다. "너는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정말 대단하다." 그 친구는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고 으쓱해졌던 것이다. 나는 미술 수업 때마다 아이들이 꺄륵거리고 재미나게 수업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 친구는 매번 "오늘은 이걸 잘했네", "우리 쉬는 시간에 뭐 하고 같이 놀까?" 이런 말들을 들으며 조금씩 자신감을 찾고 유치원에서도 자기표현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엄마는 부산에 와서 작은 아이가 아들의 첫 친구가 되어 주었다고 감사해했다. 우리도 매주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 둘째는 그렇게 해맑고 따스하게 자랄 줄로만 생각했다. 첫째와 달리 학교에 입학하고는 좌충우돌 사건사고도 많았다. 학교 담임선생님들과 자주 연락을 하며 소통을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께서는 자라면서 좋아지는 부분이 있으니 그런 면에 있어서 나를 안심시켜 주시기도 했고, 또 아이와도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중학생이 되면서였다.
신입생이 된 지 겨우 일주일 남짓 되었을 때, 급우와 싸웠다고 연락이 왔다. 아이에게는 전후 상황과 본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상대 아이는 반에서 제일 작은 아이였고, 둘째는 제일 큰 무리에 속했다. 둘이 싸웠는데, 본인만 잘못했다고 사과를 강요받는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했다. 당시 학생주임 선생님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서,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선생님께 반항한다며 심각한 문제아로 몰아갔다. 아이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고 학교에 가기 싫어하니, 상담센터도 가고, 병원도 데리고 다녔다. 상대 아이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수업시간 중에 선생님 몰래 아이에게 비아냥거리거나, 자극하는 언행을 이어갔다. 아이는 지속적으로 힘겨워했다. 난감한 것은 학교에서는 상대 아이에 대한 것은 개인정보라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또래보다 성장이 늦은 편이어서 처음에는 다들 귀여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중학생 또래가 하지 않는 언행을 계속해서, 학급에서 그 친구에게서 피해를 보지 않은 아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결국 한 학기가 지날 무렵 학생주임 선생님은 "태도가 나아진 아이는 OO이 너밖에 없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 편이 없는 곳이 된 학교에서 둘째는 점심시간이면 두 살 터울의 형인 첫째와 그 친구들과 어울렸다. 첫째의 친구들은 집에도 자주 놀러 왔기에 이미 익숙하고 말도 잘 통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악연을 만났다. 낯 모르는 녀석이 이유도 없이 둘째의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일이 생겼다. 이 아이는 첫째 친구들 중 한 여학생의 동생이었다. 이유도 없이 맞은 둘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쫓아가서 본인도 그 아이를 때렸단다. 둘이 덩치도 비슷하고 자기가 먼저 잘못한 것이 있으니 별 대응 없이 지났지만, 둘째는 어이없고 억울할 수밖에. 문제는 그 아이가 둘째를 볼 때마다 슬쩍슬쩍 건드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학급 전체의 문제가 되었던 급우는 학년이 바뀌면서 다른 반으로 배정이 되었고, 점점 둘째를 자극하는 일이 줄었다. 하지만, 첫째 친구의 동생인 이 녀석은 재미를 붙인 것인지, 다른 반인데도 볼 때마다 아웅다웅거렸다. 그러다 3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이 되었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시간에 이미 말씀드려서 가능한 한 둘의 자리는 멀리 배치했으나, 둘의 앙숙관계는 여전했다. 둘이 으르렁거리긴 해도 큰 문제를 일으켰던 것은 아니어서 딱히 다른 조치를 하진 않았다. 그제야 알게 된 그 아이가 둘째를 괴롭히는 이유는 처음 보았을 때 누나와 친해 보여서였다고 했다. 그 누나는 친구들 간에도 잘 지내며 공부도 꽤 잘하는 아이였는데, 그 동생은 완전히 반대였다. 집에서 기대를 받는 누나와 친하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를 괴롭힌다는 게 말이 되나? 어이가 없는 와중에, 첫째와 친구들이 그 아이의 집에서 아이들 대하는 태도가 ‘내놓은 자식’이라는 표현을 썼다. 내 아이를 괴롭히니 한편으로는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가족이 다정히 대해주면 좋을 텐데… 둘째는 너무 싫지만, 딱히 방도가 없으니 가능한 한 참는 쪽을 택했다.
여름방학을 마치자마자 둘은 또 붙었다. 체육시간에 짝을 지어 배구연습을 하던 중, 그 아이가 누군가의 공을 맞았다. 대뜸 둘째를 지목하며 화를 내기에 처음에는 못 들은 척했단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그 아이가 욕을 하기 시작했단다. 아빠욕까지는 참았는데, 엄마욕을 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단다. 둘째는 그대로 그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수업시간이고, 육탄전을 벌였으니, 둘 다 벌을 받아 마땅했다. 선생님이 화해시키기에 둘째는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났고 진정하기 어려워했다. 자신이 먼저 때린 건 잘못했지만, 그 아이에게 사과하고 화해할 마음은 없다고 했다. 둘이 시시콜콜 다투는 건 선생님도 나도, 그 아이 부모도 알고 있던 일이었다. 이처럼 크게 싸운 적은 처음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일단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대신 사과드렸다. 선생님도 아이들의 관계를 알고 계셨던 터라, 둘째가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집에서 쉬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주셨다. 다만, 졸업을 앞둔 중3이라 나도 상대 부모도 학폭위는 열지 않기를 바랐다. 얼마 후 선생님은 난감해하며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 교육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불과 2주 전 변경된 규정에 의하여 연속 3회 이상 같은 상대와의 다툼은 심각한 것으로 인지하여 신고의무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담임 선생님이 사건을 알면서도 은폐한 것이 되어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다.
규정이라.
졸업과 진학을 앞둔 마당에 학폭위가 열리면, 짧게는 수 주에서 길게는 여러 달이 걸리기도 한다. 학기 내내 소요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처벌수위가 나온 들, 아이 둘 다에게 무슨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 것인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나도 상대 부모도 그 과정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시기적으로도 아이들이 위원회 과정을 밟아가느라 계속 그 사건을 복기해야 해서 상처만 더할 것이 자명했다. 게다가 3회 이상이니 이전 일들도 복기해야 할 것이었다. 솔직히 지속적으로 둘째를 힘들게 해온 상대 아이가 이해되지 않았고, 자식을 관리하지 않는 부모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가 몇 년에 걸쳐 괴로워했는데, 가만두고 싶지 않은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둘째에게도 분명한 잘못이 있었고, 그 아이도 지속적으로 잘한 것이 없는 상황 아닌가. 확실하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지 않는 상황에서 규정상의 그 과정을 밟고 그 시기를 보내면 두 아이 모두의 중학교 마지막 학기는 엉망이 된다. 고민이 깊어갔지만, 결정을 해야 했다.
내가 너무 힘들지만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답이다. 학교에서 아이의 안정을 위해 출석만 하면 수업시수를 인정해 주겠다는 제안. 그것도 사실 당황스럽고 웃긴 제안이었다. 학교가 수업만 하는 곳이 아닌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아이는 과연 안정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되면 마음이 너무나 힘들어도 버텨가던 둘째의 학교 생활은 이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차라리 그만두게 하는 게 나아 보였다. 하지만,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자퇴제도가 없다. 요청에 의해 그만둘 수는 있지만, 고등학교 같은 자퇴가 아니라 검정고시를 통과할 때까지 졸업유예이다. 바로 그만두면 중학교 졸업도 안되고 검정고시를 안 봤으니 고등학교 진학도 안된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말이다. 남은 방법은 딱 하나다.
둘째를 전학을 시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