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은 시키지 않아도 하는 법
자기주도학습이라는 용어가 나오면서 곧이어 나온 것은 자기주도학습을 도와주는 학원의 등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반 주입식 학원에 지친 사람들은 곧 자기주도학습을 표방하는 학원으로 옮겨가 새로운 형태의 학원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걸 알게 된 것이 아마도 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었다.
아이들은 학습을 위한 일반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는 미술학원, 합기도장, 음악학원 등으로 가득 채워진 일정을 보냈다. 큰 아이가 중학교 때 잠시 다닌 학원도 사실은 공부방이라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학년이 다른 학생들이 시간 맞춰 가면, 각자 그날의 학습범위를 정하고 자습을 하다가,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고, 학습이 마칠 즈음에 제대로 공부를 했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 익숙하고, 성적이 좋든 나쁘든 본인이 감당한다.
큰 아이는 재작년 수능을 한 달 앞두고서 기타를 주문했다. 그동안 저축한 것과 주식을 좀 팔아서 자금을 마련했다며 처음 주문한 것이 깁슨 레스폴이었다. 수능을 앞두고 기타라니,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일을 하면 그 녀석이 아니지. 기타는 남편도 한동안 치긴 했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지 싶어 그냥 지켜보았다. 대신 수능은 약속한 것이니 반드시 볼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학에 대한 이야기도 슬쩍 흘리곤 했다. 아이의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가 중요하지. 수능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기타 연습을 시작했다. 물론 어디 학원을 가서 배운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곡 위주로 유튜브 영상을 스승 삼아 독학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펙터였다.
사실 나는 피아노를 오래 배웠었고, 클래식 악기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지만, 기타에 대해서는 모른다. 남편이 연애 시절 연주를 들려주곤 했어도, 음악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을 뿐, 그 악기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이는 그런 나에게 기타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며, 신이 났다. 내가 놀란 것은, 악기 하나만으로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일렉트릭 기타는 전원을 연결해야 하고, 이펙터로 소리를 변형하고, 앰프가 있어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그렇지, 일렉트릭인데 전기 신호로 변환하고 증폭시켜야 하는 게 당연하지. 게다가 이펙터는 말 그대로 다양한 효과를 주는 장치라 여러 개를 마련하면 훨씬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각 장비들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펙터를 알아보던 아이는 조립을 할 수 있는 키트가 있다면서, 흥분했다. 완제품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원하는 소리를 만들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없지. 그래서 이 녀석은 전자기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소리에 관련된 파트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더니, 키트를 사서 조립을 시도했다. 커버에는 페인트로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렸다. 납땜 용품도 샀다. 첫 작품이 완벽하기는 어렵지. 키트 내부에 전선들을 제대로 잘 넣는 것이 관건인 모양이었다. 납땜은 중학교 때도 해봐서 문제가 없었는데, 땜질을 먼저 했더니, 공간에 맞게 전선을 집어넣는 게 어렵고, 전선을 먼저 넣었더니 납땜이 어려운 상황이었나 보다. 결국 완성은 했지만, 원하는 소리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완제품이 비싼 이유가 있는 것이지. 직접 체득해 봐야 직성이 풀리고 제대로 알아야 수긍도 할 수 있다. 매번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스타일도 있는 거지. 여하튼 이론적으로 학습을 하고 실제로 제작을 해보고서 이펙터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 후로는 마음에 드는 것을 구매해서 사용한다.
자기주도학습은 학생 스스로가 학습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목표를 세우고, 학습을 위한 여러 자료를 확인한 다음 자신에게 알맞은 학습 방법을 선택해서 실행한 후 그 학습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을 말한다. 스스로 학습할 내용을 정하고, 알아가는 방식이다. 학습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의견과 이론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학습의 필요성 인지에서부터 평가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가르침에 의한 학습이 아니라 학생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학생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학습활동이 학습 효율이 높다는 개념이다. 대다수의 한국의 고등학생과는 다른 방향으로 학습하고 있는 아이지만, 자기 주도성만큼은 뛰어난 아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무모하고, 가끔은 어이없는 허점을 보여주지만,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인생은 정해진 답대로 사는 것이 아닌데.
어느새 이펙터도 이렇게 많아졌고, 기타도 하나 더 늘었다. 미술대학에 진학했는데, 기타만 치고 있는 것 같아서 가끔은 염려스럽긴 했다. 그러나 아이는 태연하게 말한다.
"엄마, 영상제작에서 꼭 필요한 게 음악이에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거든요. 저는 어느 팀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