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기분

마음을 여는 법

by 물빛

작은 아이가 전학한 학교는 작은 학교였다. 학교 자체의 규모는 비슷하지만, 이전 학교 학생수의 반도 안 되는 소규모였다. 총 13반이 있던 학교에서 바로 한 구를 넘어갔을 뿐인데, 학생수가 줄어서 5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맞이해 주던 선생님께서 이곳은 다들 잘 알고 친하게 지내는 조용한 학교라고 강조하셨다. 사실 애매한 시기에 전학을 해서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선생님도 꽤 긴장했었던 것 같았다. 이전학교에서 메시지도 갔을 것이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면, 아이는 여전히 학교 가기 싫어를 외치면서도 분주하게 준비를 했다. 이전보다 부지런을 떨고, 새 집에서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건널목을 건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널목을 건너고 오르막을 올라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비로소 안심을 했다. 하교를 하면, 선생님들이나 반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작은 학교이고 3학년 2학기에 전학했으니, 전교에서 새로 전학 온 아이를 다 알게 된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카톡에 몇 명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모둠활동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좀 놀랐다. 사실, 아이는 이전 학교에서는 동급생의 연락처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동급생 간에 존칭을 쓰는 아이이고, 이름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하지 않았고, 사적인 연락은 거부했다. 이 아이의 친구는 두 살 터울인 큰 아이의 친구들이었다. 몇 년간 얼굴 맞대고 집에도 드나들며 지내다 보니 형들을 훨씬 편안해하고 가까워했다. 친구들도 동생이라고 배척하지 않고, 큰 아이와 온오프에서 만날 때면 당연히 디폴트로 여기고 잘 지냈다. 그런데, 새로운 곳에서 이름을 기억하는 친구가 생기다니.


중학생이니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 계시지만, 학생에게는 담임선생님의 역할이 가장 크다. 매일 얼굴을 보며 조례, 종례를 하시니 당연한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하이텐션의 소유자셨다. 아이는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전학하던 날 나와 상담을 하다 보니 여학생인 줄 알았다고 했다. 머리도 길고, 조용하고 말도 별로 없어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슬쩍 보았던 반 분위기가 속닥속닥하고 크게 시끄러운 반이 아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이 제일 텐션이 높다고 했다. 아이의 성별 이슈는 모두가 신기하게 웃는 재미난 일이 되어 새 생활을 시작했다. 선생님을 보며 오히려 입시에 여념 없는 3학년에겐 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말씀만 하면 아이들이 꺄르륵 웃었다. 전학한 지 한 달 즈음되었을 때, 아이는 주말에 파운드케이크를 잔뜩 구웠다. 반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거라고 했다. 얼그레이 홍찻잎을 넣어 정성껏 구운 케이크를 한 조각씩 포장을 해서 가방 그득히 가져갔다. 베이킹은 아이의 취미생활이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겨울을 맞았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학교는 웅성 웅성댔다. 겨울방학식을 하기 전에 반별 대항 댄스대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반에서 춤을 잘 추는 아이들 위주로 서너 곡을 골라 연습을 해야 했다. 반 전원이 다 참가하는 곡 하나, 핵심멤버들만 하는 곡 하나, 남학생팀 하나, 여학생팀 하나로 구성한다고 했다. 사실 아이는 춤을 춰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에서도 이전 중학교에서도 단체로 하는 수업이 아닌 이상, 참가하지 않았다. 단체 활동을 안 좋아하기도 했고, 몸과 마음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스스로 몸을 쓰는 것은 잘 못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곡을 선정했다가 뒤집어엎기를 여러 번. 모두가 참가하려니 동작도 쉬운 버전으로 수정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학교에서 연습을 하고도 모자란다며 주말을 이용해 연습을 하기로 했다. 댄스대회가 다가올수록, 아이의 포지션이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일주일 전. 아이는 남학생팀 곡에서 메인댄서가 되었다. 별 말없이 할 일을 성실히 하는 아이라, 제대로 동작을 숙지하고 하는 아이가 에이스 몇을 제외하고는 유일했다고 한다. 에이스들은 또 다른 곡도 준비해야 해서 결정된 사안이었다.


아이들은 각 곡에 맞추어 의상도 준비하고, 돋보일 수 있는 장식을 의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단체 대회에서는 모두 머리에 리본을 다는 것으로 결정했다. 아이와 고민하다가 이왕이면 눈에 띄게 빨간 벨벳의 왕리본을 구매했다. 댄스대회 당일에 학교에서는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주었다. 아이는 웃으며 신나게 동작을 하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데, 왠지 모를 뭉클함이 올라왔다. 이 아이가 스며드는 법을 배우고 있구나. 몇 년 간의 힘들고 어색하던 학교 생활이 이제야 평범한 보통의 생활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방학을 지나 졸업식을 했다. 한 학기이지만, 감사한 마음에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환희 웃으며 말씀해 주셨다.

"생각보다 적응도 잘해서 너무 잘 지냈어요. 댄스 대회 때도 활약해서 우리 반 1등 공신이었어요.

OO이 앞으로도 엄마 말씀 잘 듣고 잘 지내자."

아이는 쑥스러운 듯 웃고 말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하진 않지만, 단체 톡을 살려두었었나 보다. 여름 방학이 가까워오자 반모임이 있다고 했다. 아이는 참가하겠다고 했단다. 좀 의외여서 어쩐 일로 참가하려는지 물어보았다.

"그 사람들은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었으니까요. 그래서 마음이 편해요. 고맙잖아요."

중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는 정말 힘들고 괴로워하는 날들이 많았다. 겨우 한 학기이지만, 전학하기 너무 잘했다. 선입견이 없는 상태로 지낸 반년 정도만에 아이는 불쑥 자란 것 같았다. 스스로 운동을 하기 시작해서 체력도 보강하기 시작했고, 표정도 밝아지고, 학교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었다. 환경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을. 맹모의 심정으로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후회도 되었다.


내 아이 어리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지만,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시기를 지나며 성장한다. 고등학교 진학 후, 중학교 1학년 때의 그 아이가 같은 학교에 배정되었다고 했다. 한 학기쯤 지나 어떤지를 물어보았다. 아이는 심드렁한 듯 그 아이의 사과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몇 년이 흘렀지만, 만숙아인 듯하던 그 아이도 자란 것이다. '그때는 내가 정말 미안했어.' 그 한마디로 아이의 지난한 시간이 용서되었다고 했다. 또한 이전 학교의 동급생 중 호기심 넘치는 아이들이 그때 왜 그랬었냐고 묻기도 했단다. 아이가 사건에 대해 설명하자, 상황을 들은 아이들이 "나 같아도 그랬겠다. 너 마음고생 많았겠네."라고 말해주더란다.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 읽었던 책 중에 '육아의 원리(나이토 쥬시치로)'가 있다. 나이토박사는 '아이가 어리다고 이해를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른처럼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 예로서 계속 우유만 찾는 3살 아이가 걱정되어서 온 엄마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아이와 약속을 할 테니 아이를 믿고 기다려 보라고. 그리고 박사는 아이의 두 눈을 보고 이야기했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어. 우리 우유는 그만 먹기로 하자." 그리고 두 주 후에 만났을 때 아이는 우유를 덜 찾고 다른 음식도 섭취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단적인 예라고도 할 수 있고,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을 사실로 믿고 싶었다. 그리고 꾸준히 아이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흔히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을 하지만, 기다림이 힘들어서 지레 포기하곤 한다. 하지만, 작은 아이를 보면서 느꼈다.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아이가 동굴에 숨어 지내는 동안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리 내어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톡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아이는 본인의 생각과 상충하는 현실에 괴로워하면서도 나름으로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해나갔다. 시간이 아주 지난하게 많이 걸릴 뿐이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자신을 제대로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한 사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이는 온마을이 키운다는 말처럼, 평안한 가족관계, 넓고 안정적인 사회 경험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다각도의 많은 관심을 먹고 자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이가 있다면 아이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갈 수 있다. 스스로를 위축시켰던 아이는 전학을 계기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작년 고등학교 1학년 운동회에서 모두와 함께 웃으며 단체 사진을 찍고, 음악시간에 혼자 코스튬을 하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올 가을, 수학여행을 가서 반대표로 장기자랑에도 나갔다. 코스튬을 하고 노래를 불렀단다. 아이는 그렇게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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