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갈래

탄자니아 자원봉사

by 물빛

"탄자니아에 봉사활동을 가보는 건 어때?"

처음 질문을 던진 것은 작은 아이에게였다. 학교 생활로 너무 힘들어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둔 상태라 아주 다른 환경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큰 아이가 더 호기심과 기대를 드러내며 자신이 꼭 가고 싶다고 했다.


내 페친 중에는 탄자니아에서 NGO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세 자녀를 데리고 탄자니아에 이주해서 지내고 있다. 한국에 왔을 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친구가 NGO를 운영하는 취지나 운영방식에 공감했었다. 현지인에게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것은 당연히 도움이 된다. 친구가 주목한 것은 이들의 생활이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 어떤 것이 더욱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인가에 있었다. 후원금에 대해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은 기본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봉사단체를 통한 후원이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리포트를 받아보면서 언젠가 직접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단체도 좋지만, 친구가 운영하는 이 작은 단체의 방식이 나는 좀 더 마음에 와닿았다. 아프리카에 간다면 이곳을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예정대로 수능을 치른 후, 아이는 딱 한 학교만 지원했다. 처음부터 두 학교만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먼저 지원한 학교에서 실기 시험을 보고 난 후에 탄자니아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두 번째 학교에서 혹시나 서류 합격을 해버리면, 탄자니아의 일정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며 아프리카행을 택하겠다고 했다. 물론 아이는 수능 이전부터 유학을 꿈꾸고 있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학교는 지원한다고 합격시켜 주나. 또 탄자니아든 유학이든 가겠다고 마음먹는다고 가게 되는 것인가. 한숨이 나왔지만,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부산 한 호텔에서 열린 유학박람회에 갔다. 영어권 나라의 학교들이 참가했고, 대부분 입학담당 행정직원이 나왔으나, 현지 교수들이 나온 학교도 있었다. 그런 학교는 바로 인터뷰도 가능했다. 놀랍게도 수능성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꽤 많이 있었다. 물론 대표적인 아이비리그는 어림없다. 아이는 미술전공이니 영어성적과 포트폴리오만 있으면 바로 지원이 가능했다. 고등학교 성적표와 졸업장 또는 졸업예정증명도 필요한데, 그것은 검정고시 성적과 합격증으로 대체 가능하다. 인터뷰를 직접 해본 학교들도 꽤 좋은 선택 같아 보였고, 미술로 전향하기 전 과학에 매달렸던 아이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곳도 몇 군데 보였다. 아이의 작품을 보고서 관심을 보이는 교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도리질을 했다. 이 녀석은 이미 일본학교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아이의 겨울방학을 맞아 남편이 있는 서울에 갔다. 일본입시전문유학원의 상담을 잡았다. 코엑스에서 하는 유학박람회도 가보았지만, 규모만 클 뿐이고 부산에서의 박람회보다 실속은 없었다. 유학원 선생님은 정말 성의껏 설명을 해주셨다. 미술전공은 영어권처럼, 어학성적과 포트폴리오가 있으면 지원가능했다. 더우기 6월과 7월에 있는 일본어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그 해 바로 입시를 치를 수 있다는 꿀정보를 얻었다. 다만 이 녀석은 일본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 관건이었다. 6학년부터 하루 서너 장씩 학습한 구몬일어가 전부였다. 물론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엄청 보았었지만. 이 사실을 알았으니, 한국에서의 두 번째 학교는 서류조차 지원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탄자니아행을 준비해야 했다. 친구는 준비물과 유의사항을 아주 꼼꼼히 보내주었다. 착착착 준비하던 중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유관 기관들에서 말이 조금 달라서 발생한 일인데, 탄자니아 입국 시 황열예방접종확인서가 필요했다. 출국일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황열예방접종을 하는 병원이 흔하지 않았다. 심지어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백신이 없어서 바로 접종을 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서울 일정 마칠 즈음 그 사실을 알고 혼비백산했다. 서울의 병원들에서는 최소한 7일-10일 정도 대기해야 했다. 부산의 병원들을 수소문했으나, 백신이 없다고 했다. 이것 때문에 출국에 발목 잡힐 수는 없지 않은가. 검색에 검색을 하다 보니 경상권에서는 대구와 통영에 접종이 가능한 병원이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통영으로 가자. 이틀 후에 접종하는 것으로 예약을 하고, 아이와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서울에서 운전해서 내려온 피곤함은 챙길 여력이 없었다. 통영 강구안 근처의 병원에서 접종을 하고, 주의사항을 들었다. 코로나 백신처럼 열이 날 수도 있다고 해서 미리 타이레놀을 챙겨 먹었다. 접종 자체야 얼마 안 걸리는 일이지만, 수속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흔히 하는 접종이 아니다 보니, 인적사항을 다 기재해서 보고해야 하는 것이었다. 접종하고 보니 2시간이 훌쩍 넘었다. 그제야 아이가 좋아하는 단골집에 가서 점심으로 해물라면을 먹었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통영바다를 잠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었다.


아프리카에 가는 항공기에는 다른 곳보다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다. 일반적인 해외노선에는 23kg 또는 25kg 가방 하나를 수하물로 보낼 수 있다. 아프리카행에는 23kg 가방 두 개가 가능하다. 친구가 알려준 준비물을 다 챙기자니 최대한 많이 넣어야 했다. 기내용 가방도 가져갈 수 있으나 보조로 보스턴 백까지 사용해야 했다. 한국에서 조달한 후원 물품들과 그곳에서 공식적으로 선물로 사용할 물품들, 친구 가족이 이용할 용품들이 한가득이었다. 물품들을 배송받고 착착 쌓아 넣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후원물품들을 현지로 가져가는 그 자체가 봉사로구나. NGO를 운영하는 친구는 1년이나 2년에 한 번 한국에 나온다. 그때 비슷한 정도의 물품을 이송할 수 있지만, 한 사람으로는 한계가 뻔히 보였다. 한국 내에서처럼 택배로? 어림없다. 해외에 물품을 발송해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중량별, 박스 크기별로 운송료가 붙는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허다하지 않나. 게다가 아프리카 내에서 안전하게 배송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자원봉사자들이 이송 업무를 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탄자니아행 비행기는 직항은 없고, 한 두 번 경유해야만 한다. 인천에서 한밤중에 출발해서 두바이를 경유하고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으로 간다. 아직은 아이가 미성년자이고 혼자 가기 때문에 가장 시간이 적게 걸리는 항공스케줄을 선택했다. 그래도 20시간이다. 인천으로 가는 것도 큰 일이었다. 김해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바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드물다. 내차 보다 엄마차의 트렁크가 더 커서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짐을 가득 싣고, 김해공항으로 가서 수속을 하고 아이는 김포공항으로 갔다. 김포에서는 남편이 아이를 맡아서 함께 인천공항으로 이동했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김해에서 국내선을 탈 때 연결 편이 탄자니아인 것을 확인하고서, 수하물 규정을 아프리카 규정을 적용시켜 준 것이었다. 아이는 아빠와 저녁을 먹고, 한참을 기다려 두바이행 비행기를 탔다.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혼자 챙겨야 한다.


해외에 처음 간 것도 아니고, 경유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잘할 거라고 믿고 보냈다. 물론 혼자 떠난 것은 처음이지만. 두바이에 도착해서 아이는 깜짝 놀라서 연락을 해왔다. 수하물은 연결 편으로 연결되니 문제가 없는데, 공항이 커도 커도 너무나 크단다. 6시간 정도를 있어야 하는데, 항공사의 터미널이 달라서 이동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며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신나는 기색이 흘러넘쳤다. 문제는 아이는 성인이 아니라 신용카드가 없는데, 물 한 병을 사려고 해도 현지 돈이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달러를 챙겨갔지만, 공항이 너무 커서 환전소를 찾는 것도 어렵고, 1달러만 환전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아이는 그냥 버티기로 결정했다.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해서는 친구가 마중 나가기로 했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이 관건인데, 많은 경우 트집을 잡거나 짐 중 일부 물건을 빼앗긴다고 했다. 친구는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기면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을 거라고 여러 번 이야기하며 안심시켜 주었다. 아이가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해서 바로 연락이 왔다. 검색대에 가기 전 필요한 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되었다. 미성년 아이 혼자여서인지 연유는 잘 모르겠다. 친구는 자원봉사자가 오는데, 이렇게 검색대 통관이 바로 진행된 경우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이 녀석 아프리카에서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친구는 투샷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NGO가 있는 키감보니 지역까지는 바자지를 타고 이동한다. 아이는 긴 여정에 좀 많이 피곤했고, 처음 타는 바자지에 울렁울렁 멀미도 했다.


앞으로 한 달, 너의 성장을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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