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상형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서로 말을 많이 주고받는다고 해서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부모님을 보면서 그걸 몸에 각인시켰던 것 같다. 부모님은 대부분 다정했지만, 때로는 격렬히 싸우기도 하셨다. 여느 부부가 그러하듯이. 어린 내 눈에 늘 이상했던 것은 말은 오가고 있어도 일방적이라는 것이었다.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적절한 타이밍에 말하면 언뜻 보기에는 서로 이야기가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사람들을 대할 때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편했다. 그래야 서로 어느 정도의 존중과 배려가 가능했다. 많은 경우에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쉽게 선을 넘는다. 그 선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마다 경계가 다르다. 친하다는 것이 내 생각과 판단을 침범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하니까 배려해 주는 척하며 자신의 의도나 생각을 주입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족이나 친한 지인 관계에서 더욱 자주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화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타인이기에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느끼는 감정도 당연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이야기에 반박하거나 화를 내기에 앞서서 충분히 듣는 것이 먼저이다. 그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난 후에 내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다. 이미 상대는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쳤으니까.
사람들은 나와 대화가 잘 통한다고들 말하곤 한다. 나는 상대가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잘 들어준다. 이야기를 마치면 뿌듯하고 행복한 얼굴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서로 말해준다. 혹시 누군가와 대화가 잘 통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느 쪽이 주로 듣고 있었는지를. 진정한 대화는 서로 들어줄 수 있는 관계여야 가능하다.
우리 부부는 다툰 기억이 별로 없다. 우리가 싸우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의견이 충돌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서로의 다른 의견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대화로써 그 사람의 존재와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