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유튜브 알고리즘에 타로영상이 뜨기 시작했다. 아마 폰을 바꾸고 나서였지 싶다. 구글 로그인에 문제가 생겨서, 내 이전 기록이 없는 상태였었지. 세상에 그렇게 타로리더가 많은 줄도 몰랐고, 제너럴 리딩이라는 방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서너 개의 선택지를 두고 하나를 골라 듣는 맛이 쏠쏠했다. 심각한 고민거리를 안고 사는 건 아니어도 점집에 가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지.
수술 후 집에 있을 때 라비언니는 온라인 활동을 좀 활성화하기를 추천했다. 새롭고 다양한 이들 중에 마음이
맞는 이가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생활에 활력도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언니의 친구들 중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진지하고 소통을 중요시하는 이들 몇몇을 골라서 친구가 되었다.
새 친구가 늘면서 조금씩 웃음도 찾아가고 있던 무렵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아는 이름이었다. 함께 아는 친구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내가 알던 친구가 맞는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친구 신청을 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 접었었다. 큰 아이가 탄자니아에 갔을 때였다. NGO 대표의 피드에 댓글을 남긴 것을 보고 그 친구의 피드를 들여다보았다. 궁금해져서 설깃설깃 엿보기를 하고 있는데,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네. 어머. 그 친구가 맞구나!
파워풀하게 노래를 잘하고 끼가 넘치던 그 친구는 우리 과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던 아이였다. 대표의 말로는 타로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그마치 삼십 년이 흘렀다. 뜬금없이 연락을 해도 되는 걸까 고민이 깊었다. 어쩌면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설연휴가 되면서 그녀의 피드를 보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나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더 앞섰다. 무슨 과 몇 학번이 아니냐 물었을 때 그 친구는 화들짝 놀라더라. 며칠이 지난 후 내가 기억이 났다며 말을 걸어왔다. 간간히 서로의 피드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존대했다. 사실 나는 후배들에게도 말을 잘 놓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친밀감도 좋지만 사람들 사이의 적정한 거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생일이 지난 어느 날 그녀의 피드에 너무 예쁜 고양기가 그려진 타로가 올라왔다. 너무 예뻐서 감탄사를 남겼는데,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를 위한 타로를 뽑았다고 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감동인데, 자세히 설명해주고 싶다며 통화를 할 수 있겠냐고 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꽤 오래 통화를 했고, 말을 놓기로 했다. 타로 리더들의 제너릴 리딩을 들을 때 놀라왔던 것은 같은 주제로 다른 이의 리딩을 들어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뽑아 준 한 장의 타로카드.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제법 많은 사실을 유추해 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장녀라는 공통점에 공명하기도 가능했다. 내 염려와는 다르게 그녀는 그 시절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다른 친구들도 궁금해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고민만 하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무언가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 삶이란 매 순간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작년 봄 전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했다. 삼십 년 만에 찾은 새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다. 쌓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하게 공명했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녀를 보러 왔다. 모처럼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