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함께 길을 걷다 아들이 불쑥 물었다. “엄마 제 머리색이 많이 갈색이에요? ”“그렇지. 넌 많이 밝은 색이지. 왜?”“사람들이 처음엔 별말 없다가 좀 친해지면 얘기해요. 한국계 같다고요. 어릴 때 외국에 살았었냐고 묻는 사람도 많아요.”“넌 바이브가 좀 그렇지. 그래도 넌 한국인으로는 보는구나. 하하”
나는 어릴 때부터 외국인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다. 체구에 비해 얼굴이 작고 눈이 크고 피부가 흰 데다 머리색은 밝은 갈색이었다. 부모님 두 분 다 토종 한국인이고 심지어 두 분이 좀 닮았다. 잘 모르는 어른들은 혼혈이 아닌가 쑥덕거리는 경우도 많아서 어릴 때엔 상처를 꽤 많이 받았다. 성인이 되고는 경험이 많아져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보고 외국인인 줄 알았다는 말이 꼬리처럼 붙는다. 흰머리를 염색하러 가면, 헤어 디자이너에게 내 기존 머리색을 가리키며 어떻게 시술하는 건지 물어보는 이들도 제법 많다. 흰머리까지 나니 언뜻 보면 금발에 가까울 정도로 멜라닌 색소가 적어서 그렇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아무래도 외모를 제일 먼저 보게 된다. 내면이 더 중하다고 하지만 처음에 무슨 수로 내면까지 다 본단 말인가.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쌓이면 그 사람의 또 다른 진면목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첫인상은 아무래도 외모에서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대화를 해보면 외모에서만 느끼는 인상과 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우리 동네는 십여 년 전 처음 이사 왔을 때에도 외국인이 꽤 많이 살고 있었다. 또한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나를 처음 보는 이들이 “헬로”라거나 “아임쏘리”하며 말을 걸어왔다. 나도 자연스럽게 외국인이면 영어로 한국인이면 한국어로 대답한다.
놀라운 것은 내 아이들도 그렇게 보인다는 점이다. 남편은 나와 달리 완전히 까만 머리에 피부도 흰 편이 아니다. 아이들은 바깥생활을 하니 피부도 적당히 그을렸고, 학교 친구들과도 무리 없이 잘 지냈었다. 아이는 공립학교를 다녔지만, 지역 특성상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꽤 많았다. 아이가 다른 동네의 학원을 다니게 되고 다른 지역의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본인의 외모와 이미지가 일반 한국인과 좀 다르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머리칼을 좀 기르니 더욱 한국의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느낌이 나는 듯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들어온 이중국적자 느낌이라는 것이다. 와! 유전자의 힘은 정말 강력하구나.
얼마 전 아이가 “뭐지? 몰카인가? “ 라며 같은 과 친구와의 톡을 캡처해서 보내왔다. 함께 온라인으로 게임하자는 약속을 하던 중, 친구가 너 한국인이냐고 하고 물은 것이다. 두 학기째 같이 수업을 듣는 녀석이다. 온 가족이 저항 없이 빵 터져 웃었다.
다음 날 수업을 다녀오고는 생각보다 한국인 유학생인지 몰랐던 친구들이 여럿 있더란다. 이름이 한국인스러우니 당연히 이민 2, 3세 정도로 생각했단다. 이 녀석 일본어가 꽤 능숙해졌구나란 생각과, 일본서도 한국적인 이미지로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뭐 어때? 어디에서든 잘 어울려 생활하면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