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담임선생님은 매일같이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게 하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하다 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소리치는 게 좀 부끄럽기도 했는데, 각인되었나 보다. 사회생활을 하다 만나는 문제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당당해야 한다’와 함께 늘 떠오르는 문구였다. 그래서였을까. 무언가 해내지 못할 거라거나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레 겁먹고 물러서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무엇이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처음 엄마가 되어 막막한 순간에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만 같던 그날 이후에도 감정은 미루어두고 내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것을 철저히 분리할 수 있었다.
수술을 한 이후로는 어쩔 도리없이 제약이 생겨버렸다. 갑상선암은 다들 쉽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는 지극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 항암치료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조기에 발견해서 말끔히 제거도 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내게 몰아닥친 여러 질병들은 신체적 한계를 가져왔다. 사실 동시는 아니지. 내가 내 감정은 모른 체하고 뒤로 미루어둔 시간 동안 내 몸은 서서히 망가져온 것이다. 엄밀히는 수술 즉 암을 계기로 그 이삼 년 전부터의 불편함을 정확히 인지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명확한 이름을 가진 병과 불명확한 통증이 공존하는 가운데, 자가면역질환이 포함되어 있고, 갑상선은 호르몬이 관여하는 기관인데, 갱년기까지 겹치니 여성호르몬까지 완벽하게 합세하여 나를 공격한다.
활동 스케일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어떤 요인으로 급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질지 알 수 없어 늘 대비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하나의 증상도 여러 진료과와 복용 양의 영향을 입체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하고픈 일을 정할 때에도 신체적으로 에너지 소모의 정도가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신체적 한계를 느낀다는 것. 어릴 때에는 비록 잔병치레가 잦았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일이다.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한계를 넘어서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