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디님은 다정한 분이셨다.
둘째를 낳은 후 어느 날, 점심 약속을 한 날이었다. 그날따라 남편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았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아서 모임을 취소하는 게 어떠냐 여쭈었는데, 놀랍게도 올 때까지 기다리시겠다고 했다. 약속시간 전부터 시작한 실랑이를 한참이나 더 하고서 영유아인 두 아이를 챙겨서 나갔을 때는, 이미 두 시간쯤 늦은 시간이었다. 내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지쳐 바닥이 났다. 남편에 대한 속상함과 화남은 물론이거니와 윈디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약속을 취소해주시지 않음에 대한 서운함까지 더해 올라왔다. 밥집에 들어서는 순간, 밥집 주인장이 쓴소리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 사주고 싶으시다는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주인장은 마치 새로 한 듯 따뜻한 밥상을 내어 주셨고, 우리는 다른 손님 없는 여유로운 곳에서 모처럼 느긋하게 먹었다. 하지만, 이 날이 마지막 가족모임이었다. 마음에 큰 빚을 진 날이 되었다.
그 따뜻한 밥과 마음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무책임함 사이의 괴리를 견디기 어려웠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온 가족이 모임에 나가는 것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었다. 일 마치고 밤늦게 기차 타고 내려온 터라 힘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간다 해도 두 아이들 챙기느라 밥을 시간 내에 제대로 먹는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늦지 않았다면, 나는 식사를 못 했을 것임이 자명한 일이었다.
이후로는 사무실이 우리 집 근처에 있다며 때때로 문자안부를 주곤 하셨다. 아이들 이야기, 건강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인테리어 일로 상의할 때에도 실측 때를 제외하고는 인부만 보내주셨다. 그게 주말부부인 나를 염려해 주는 방식이었다는 걸 이제야 명확히 깨닫는다. 마음에 빚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말이었구나. 마음 편히 지내자는 말이었구나. 그리 모두에게 다정하셔서 급히 가신 걸까. 바람 부는 날이면 윈디님이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