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럴 줄 알았어.
일본미술유학
유학원에서 알려준 일본미술학원이 몇 개 있었다. 나름 고심 끝에 한 곳을 선정했고, 아프리카에 가기 전에는 상담미팅을 할 시간 여유가 없어서 돌아온 후로 잡았다. 다행히도 집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만 가면 되는 곳이다. 학원에 들어서자 꽁지머리를 묶은 까만 곰 같은 분이 맞아주었다. 이 학원은 서울과 부산 두 개의 원이 있고, 부산원 원장선생님이었다. 때때로 서울 부산 선생님들이 크로스해서 평가를 진행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일본미술대학의 입시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해주셨고, 아이가 지망하는 학교를 물어보셨다. 아이가 마음에 둔 학교는 두 개였고, 동경에 있다. 선생님은 어느 학교 무슨 전공을 지망할 것인지 미리 정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각 학교 홈페이지에 매년 입시합격작들 중 우수작을 제공해 준다. 선생님은 인쇄한 책자를 보여주셨다. 작품을 보니 과연 전공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아주 곤란하겠다 싶었다. 전공마다의 입시 출제 문제가 확연히 달라서 각 전공에서 원하는 학생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서 화풍과 스킬에 맞는 몇 가지 전공을 추천해 주셨다. 그런데, 아이가 눈을 떼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영상학과의 '감각테스트'라는 이름의 시험이다. 문제는 한자 하나나 둘을 주제어로 제시하는데, 이것으로 숙어를 만들어서 뒷면에 쓰고, 앞면에는 글과 그림을 배치하는 시험이다. 시험시간은 3시간 주어진다. 정답은 없지만, 합격작을 보니 써야 하는 글도 2000자 이내라 적지 않고, 그림까지 그려내려면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더욱이 아이의 일어실력은 검증받은 적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아이는 상담실을 나서자마자 말했다
"엄마, 전공 정했어요. 저는 영상학과로 할래요."
너는 그럴 줄 알았다. 선생님께는 고민해본다고 이야기했지만, 네 눈빛은 이미 결정한 듯했어.
원장선생님은 그 학교 그 과제를 합격하고 그 전공을 졸업한 분이셨다. 그 전공이라면 실기는 합격할 수 있게 지도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라며 자신있는 모습을 보이셨다. 다만, 다른 전공에 비해 글쓰는 능력도 중요하므로, 문학성도 함께 높여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준비하려는 또 다른 학교는 손 소묘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과연 일어는 가능해질 것인가.
일본어 학원은 미술학원에서 추천해 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유학원을 겸한 일본어 학원이어서 일본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의 일어실력은 검증된 적이 없으므로 제일 낮은 반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영상학과를 준비한다고 하니, 일본인 선생님과의 회화수업도 같이 받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했다. 일본인 선생님이 미술전공이라 대화하며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어 어학 시험은 두 종류인데, 두 가지를 다 치르는 것이 좋다고 했다. 6월에 치르는 EJU(일본유학시험)와 7월에 치르는 JLPT(일본어능력시험)이다. 각각 학교에서 요구하는 성적 이상을 받아야 10월 입시에 지원할 수 있다. 어학성적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 두 학원 선생님 모두 상반기에는 일어에 더 포션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인 아이는 3월부터는 아침 9시부터 1시까지 일어수업을 하고, 1시 반부터 10시까지 미술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그만둔 후로는 태생인 야행성다운 생활을 영위했었다. 탄자니아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하루 종일 빡빡한 수험생 생활을 시작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라지만, 빠듯한 생활을 아이의 체력이 버텨낼 것인지 염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