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으로

안정된 생활을 해보자

by 물빛

작은 아이는 집 근처의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집에서는 가장 가깝고, 걸어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이전 악몽의 시간이던 중학교 바로 곁에 있다. 졸업을 한 중학교는 다른 구에 있지만, 고등학교로는 같은 교육청 영역이라 그 학교 근처의 고등학교에 1 지망을 넣었었다. 버스를 타더라도 다른 학교가 예전 동급생들과 부딪힐 일이 적어서 좋을 것 같아서였는데 아쉽게 되었다. 그래도 걸어갈 수 있으니까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 졸업식 후에는 본가에서 생활을 했고, 겨울 두 달간 오피스텔은 짐을 조금씩 빼내면서, 아이들의 운동 중간지점으로 이용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아이들은 뛰어가서 혼자 책을 읽기도 하고, 잠시 쉬기도 했다. 단기 임대라도 6개월은 계약을 해야 했었기에 3월에 계약이 종료되었다.


이사라고 하지만, 들어갈 때와 달리 한 번에 짐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서 틈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집으로 옮기곤 했다. 책상으로 쓰던 테이블과 의자가 제일 큰 물건이었어서, 그것 옮길 때만 이모의 도움을 받았다. 테이블은 이모의 사무실에서 여분의 것을 빌려온 것이라 다시 사무실로 원위치시켰다. 붙박이장의 물건들을 모두 옮기고, 입주 때처럼 텅 빈 공간을 보니 모든 답답하던 마음이 씻겨 내려간 듯 홀가분했다. 부엌의 작은 창으로 매일 아이가 등교하는 모습을 바라보았었다. 겨우 두 계절을 보내는 동안 부쩍 밝아지고 건강해진 아이를 보면 뿌듯함마저 들었다. 아차. 정신 차려야지. 비워낸 공간을 모두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서 주인에게 전송했다. 집주인의 깔끔하게 이용해 주어 감사하다는 말과, 다음에도 인연이 되면 좋겠다는 말이 따스하게 여겨졌다. 내게 가장 가난하고 아픈 시절이던 동네가 이렇게 따뜻한 기억으로 다시 기록되었다. 그동안 가던 동네의 작은 맛집들도 이제 자주 가진 못하겠지. 그것만이 조금 아쉬웠다.


작은 아이의 학교는 큰 아이가 다녔던 곳이다. 우리 동네에 고등학교는 하나뿐이라,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동창이 그득한 학교이다. 그러나, 작은 아이가 기억하는 아이들은 몇 없다. 아이가 친구라 부르던 아이는 유학을 가거나, 다른 학교에 배정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는 새롭게 시작할 참이니까. 1학년 교실에 갔더니 낯익은 얼굴이 있더란다. 무려 4년째 같은 반인 여학생이다. 그리고 매년 부반장을 해오고 있어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친구라고 했다. 다정하고 살가운 성격이라,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아이를 보자 알은체를 하며 반가워해 주었단다. 고등학교의 시작은 무탈히 지나가는 듯해 보였다.


1년에 한 번 학교 총학부모회 및 진학설명회에는 꼭 참석한다. 고등학교 교육은 입시시스템이 바뀌기도 하지만, 그 과도기에는 더욱더 불안감이 있다. 어디에나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내 아이에게 맞는 올바른 정보를 선별하고 적용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고교학점제에 대한 홍보와 인식 제고 방안이 우후죽순 나오는 터였다. 아이는 고교학점제가 적용되지 않는 마지막 학년이다. 학교에서의 교육전문가의 설명회는 꼭 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각 학년별로 교과 커리큘럼 운영이나 입시에 대한 방향이 모두 달랐다. 예전 부모 세대에서의 대입시스템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교내의 커리큘럼이나 평가과정뿐 아니라, 해마다 계속 갱신되는 각 대학의 입시정보도 살펴야 하는 것이다. 큰 아이 때 참석했던 설명회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큰 변화를 앞둔 막연한 두려움들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나. 이 아이는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결정했으니,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서포트해야지.



공부는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해야지. 다행히도 목표가 있으니, 최선을 다해 달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쉬엄쉬엄 지낸 기간이 너무 길긴 했지만. 좋은 성적을 바라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입시를 위해 달려온 대부분의 아이들과 출발선이 다르니까. 나는 아이가 학교 생활에서 힘든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진심으로 바랐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5월이 되어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를 했다. 그리고 받은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이는 반별 단체 사진 속에서 반티를 챙겨 입고서 친구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이젠 정말, 이 아이의 사회생활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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