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물빛

화를 내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아니다. 화를 내 본 게 언제였더라?


학과장님은 충청도 분이셨다. 매우 점잖고 합리적인 분이셔서 일하는 내내 문제 될 일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당연히 상황적으로 마음에 안 차는 경우가 있는데, “거 참!”하시면 언짢음을 최대한으로 표현하신 경우였다. 물론 학과에는 열성적으로 일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학생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교수님도 계셨고, 단호한 어조로 지적할 것만 지적하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꼭 크게 소리쳐서 화를 내야지만,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분을 통해서 배웠다.


단과대학 행정실 선생님 중 유독 융통성 없고, 일머리 없다 싶은 분이 계셨다. 단대에서는 학과 단위 업무들을 통합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양식을 정하지 않은 채 공문을 발송하는 일이 허다했다. 각 학과에서 나름의 양식을 고안하여 보내면, 업무 마감 즈음에 괜찮아 보이는 양식으로 재요청하고, 며칠 후 다른 양식으로 재재요청하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짜증도 났다. 나중에는 학과 선생님들이 성토를 하다가 미리 의논하여 양식을 정하고,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마지막날 발송하는 방법을 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원이 말해주었다.

“쌤은 평소에 말이 거의 없으시잖아요. 그런데, 화나면 말이 많아지고 엄청 빨라져요.”

아. 그렇구나. 나도 나대로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을 하고 있었구나. 소리를 지르거나 비속어를 쓰지 않더라도 곁에서는 그 감정을 느끼고 인지하는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구나.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으며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유머러스하게 넘어가면 좋은 걸까? 오히려 화나는 포인트를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잘못된 상황에서 웃으면서 화를 낼 수는 없다. 차라리 거칠게 화를 내기보다 차분하게 릴랙스 하여 감정을 조절하고, 그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명확히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으면 화를 낼 일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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