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by 물빛

어릴 때부터 책이 좋았다. 집에 별다른 장난감이 없기도 했지만, 책 속에 파묻혀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재미있기도 했고 시간도 쉬이 흘렀다. 세계문학전집이나 백과사전류 할 것 없이 활자가 있는 건 닥치는 대로 다 읽었었던 기억이다. 그렇다. 나는 전집을 줄 세워 놓고 다 읽은 사람이다.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건 당연한 일상이었다. 길을 걸을 때도 책을 읽으며 걸어서 동네 어른들을 못 보고 인사 없이 지나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친구가 없는 친구집에 가서 친구어머니랑 잠시 수다를 떨다가 친구네 책을 읽거나 빌려오는 일도 자주 있었다. 내게 독서는 일상이고, 취미이면서 특징이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면서는 도서관에 가는 게 좋았다. 대학생이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자료를 찾거나, 독서실 형태의 공부할 자리를 찾는 것이 대부분이다. 1, 2학년 때에는 당연한 듯이 그렇게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도서관에서는 쉼을 느끼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서가에서 오래된 책냄새를 맡으며 서걱거리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나는 것도 좋았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드라마에서 보던 서가사이로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며 연애하는 것은 그저 환상일 뿐, 평범한 학생인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책을 보고 느끼고 곁에 있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아이를 낳고서 한동안 부모님 댁에 머물렀었다. 아이를 다독여 재워놓고 나면 몰래 일어나 거실에서 책을 읽었다. 그때는 학업을 잠시 멈추고 일할 때였어서, 전공서적보다는 가벼운 소설 같은 것을 더 자주 찾아보던 시기였다. 주무시다 잠시 깨어 나온 아빠가 나의 새로운 면을 보신 듯했다. 후에 딸이지만 시간을 쪼개 책을 읽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직장맘이라 업무와 육아에 시달리며 둘째를 가진 임산부 시절이었다.


아이와 지내면서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책 내용을 이야기하며 놀이를 했다. 아이도 자연스레 독서를 생활화했고, 우리는 매 주말에 서점에 가는 루틴이 행복했다. 서점을 돌아보며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비록 사지는 않더라도 재미있어 보이거나, 눈에 확 띄는 제목의 책이 있으면 조용히 큭큭대곤 했다.


몇 년 전에 라식을 했다. 진작 했으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안경을 쓰지 않아도 잘 보이니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느낌이었다. 다만, 나는 많이 예민한 사람이어서 불편감을 좀 오래 느꼈고, 그 해에는 수술해야 할 일까지 겹쳐졌다. 입원 때에도 당연히 책을 몇 권 챙겨갔다. 혼자 있는 많은 시간을 달래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수술은, 내 몸의 불편함은 독서를 하는 즐거움을 앗아갔다. 활자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눈이 아프고 불편하고 눈물이 흘렀다. 라식 후 눈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태였지만, 안구건조증에 노안까지 더해지는 몸의 노화일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읽고 싶은 책들을 아이들에게 권하면 곧잘 읽어낸다. 책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함께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책 읽기를 아이들에게 미루게 되면서 책 읽어주는 어플이 인기를 얻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음 한켠에는 활자에 대한 미련이 그득히 쌓여갔지만, 직접 책을 읽지 않아도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꽤 유용하고 매력적이었다.


라식을 하고 꼬박 삼 년이 지나고 나서야 눈이 한결 편안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노안은 더 진행되고 있으니, 여전히 건강하던 때처럼 집중해서 읽기는 어렵지만, 짧게 나누어서 책을 읽곤 한다. 이전이라면 하루에 읽을 것을 며칠간 나누어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조금 느리게 살아도 되잖아. 그러다 보니 읽는 속도보다 책을 사는 속도가 더 빨라서 집안 곳곳에 책이 쌓여가고 있다. 그럼 어때. 그것을 보는 것 또한 내게는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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