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학술과 예술의 여신을 뜻한다. 중세 이후로는 창작자들이 작품을 만들 때 영감을 주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 대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작품이 좌라락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디어를 얻거나 에피소드를 활용하는 것은 엄청난 도움을 준다.
국민학교 때 친하던 친구와 중학교에서 같은 반이 되었다. 오전에 비가 오다가 하교할 즈음 그쳤던 어느 날, 우산을 찾으러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에는 담임선생님과 그 친구의 엄마가 계셨다. 상담기간이 아니라 의아했다. 며칠 후에 그 친구는 우리 반 반장이 되었다. 1학년은 반편성고사 성적으로 반장이 정해지던 시기였다. 우리 반만 예외였다.
친구가 싫었던 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집 방향도 반대여서 하교 후에 무언가 함께 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학급일을 함께 해나가면서도 점점 마음이 멀어졌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어디에 말할 곳도 없었다. 그럴수록 나만 옹졸해지는 것 같아 괜찮은 척을 했다. 반면에 친구는 더더욱 반짝여지는 것 같았다. 그 일은 중학교에서도 선생님은 자본에 의존한다는 것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선생님은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2학년이 되고 우리는 다른 반이 되었다. 가을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주말에 열리는 백일장에 학교 대표로 참여했다. 글감이 여럿 있었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친구’라는 글감을 선택했다. 그 친구가 떠올랐던 것이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글을 썼다. 제출하고 몇 시간 후에 바로 수상자가 정해지는 방식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운 좋게도 좋은 성적이 나왔다. 다음 월요일에 학교에서 다시 한번 시상식을 했고, 나는 방송실에 가서 그 글을 낭독했다. 친구에게 전하는 내 진심과 소원해진 관계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을 담았었다.
그때에도 지금도 나는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정말 글을 맛깔나게 잘 쓰는 이들은 너무나 많다. 잘 쓴 글을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게 되지 않나. 그날의 사정은 내 글의 뮤즈가 되어준 그 친구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영감을 얻는 것은 운이 따르는 일이다.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뮤즈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진심이 통한다는 생각을 한다. 영감은 깊숙이 묻어놓은 진심에서 그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