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고 집에 온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이었지만, 동아리 모임이 있었다. 여유로운 방학에는 주제관련된 탐방이 예정되었는데, 그날은 수산과학관에 가야 했다. 집에서 거리가 엄청 먼 것은 아니지만,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참 애매한 곳이어서 아이와 친구들을 데려다주어야 했다. 십여분 운전했을 뿐인데, 온몸이 가라앉는 듯 힘들어서, 아이들만 수산과학관에 들여보내고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문득 친구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연락을 하고 지내는 몇 안 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내 나름으로는 가장 친한 친구. 누구보다도 우선이라 여기던 친구였다. 친구는 간호사 출신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 자연스레 생각이 났었다. 학생 때에도 의대에 갈 일이 있으면 바쁜 중에도 잠시잠시 얼굴을 보곤 했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친구의 목소리가 왠지 떨떠름했다. 느낌이 묘했지만, 이야기를 이어갔다. 갑상선암 수술을 마치고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말했는데, 본인도 갑상선저하증이 있어서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했다.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불편한 느낌이었다.
전화를 끊고서 혼자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무언가 잘못한 걸까? 나도 모르게 실수한 게 있나? 학교 다닐 적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고, 친구가 취업을 하고 내가 진학을 한 후에는 가능한 일정을 맞추어 보려고 했었다. 적어도 친구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나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관계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딱히 소식이 없는 관계. 친구가 아이를 낳는 것도, 이사를 하는 것도 내가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해주지 않는 관계. 우리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전에는 전화라도 기쁘게 받았어서 이상하다고 못 느끼고 있었다. 그날 그 통화를 마치고 나자 내가 손을 놓으면 끝나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이 다한 걸까. 역시 지금껏 연락 한 번이 없다. 잘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속상하고 인정하기 싫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다면 말해주지. 그럼 오해하거나 멀어질 일도 없는 것 아닐까 싶어 아쉬웠다.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는 그 친구에 대한 내 아쉬움이 나왔다. 내 상태는 어떤지 내 마음은 어떤지 한 번만 물어봐주지. 수술하기 전 몇 년간이 내게는 가장 아픈 시기였었는데,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연락해 온 적이 없더라. 무심하기도 하지.
친구란 항상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니어도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내 국민학교 친구들은 십수 년이 지나고 성인이 되어 만나도 반갑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대부분은 문자메시지나 SNS를 통해 생사만 알고, 실제로는 전화를 하거나 만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일정을 잡고 만나도 여전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내 생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 테다. 어린 시절의 친구일수록 만나면 더욱더 옛날로 회귀하는 재미도 있다.
고교 인연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여기던 그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사람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 어떤 이름을 갖는 관계에 있어서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는 유효기간이 짧다. 서로가 완전히 같은 마음일 수는 없지만,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을 때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해 조금 더 신중해졌다. 친구라는 범주에 어떤 조건을 달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친구를 기대하는 내 모습도 본다. 어딘가에는 내 소울메이트가 존재할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