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알게 된다는 것은 꽤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어떤 관심사에 대해 시간과 돈과 노력을 충분히 들여서 나의 호 불호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음식에 대한 취향은 성장과정 내내 지켜보아왔다. 둘은 같은 듯 미묘하게 다르다. 같은 재료라도 조리방법을 달리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다른 소스를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많다.
큰 아이는 갓난아이 때부터 절에 다니던 외할머니 덕분에 돌이 되기도 전부터 일찌감치 차를 접했다. 대중적인 녹차나 현미녹차, 감잎차 같은 것으로 시작하여 조금씩 맛보았어도 익숙해서인지 녹차류를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니 관련한 책도 찾아서 읽어 보았고, 다양한 종류의 녹차를 맛 보여 주고 다른 나라의 차도 경험하게 해 주었더니 취향도 생겼다. 이제는 잎만 보고도 대략 종류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아주 맑고 향은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을 고급으로 치는 고큐로 녹차이다. 반면 작은 아이는 녹차도 마시긴 하지만, 홍차류를 훨씬 더 좋아한다. 갖가지 꽃이나 열매들로 블렌딩 된 홍차를 마시며 힐링을 한다. 매일 등교할 때도 보온병 한 병 가득 홍차를 우려서 넣어 보내는데, 하교하고도 티팟 가득 우려내어 마시곤 한다.
큰 아이가 올해 스무 살이 되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바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성인이 되면 술을 마실 기회가 많을 텐데, 제대로 알고 마셨으면 싶어서였다. 술은 제대로 아는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은 마시되 취향에 맞게, 주량에 맞게,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술이 진정 기호식품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친구는 아이와 친구들을 바에 보내면 주류학개론을 펼쳐주기로 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서 한 층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술을 만나보면 술에 대한 취향도 생길 거라 생각했다.
주말을 이용해 친구집에 모여서 처음으로 술파티를 한다기에 같이 주류전문점에 가서 마셔보고 싶다는 술을 한 병 사주었다. 그곳은 우리 집 다음으로 아이들이 자주 모이는 아지트이다. 첫 술파티를 즐겁게 마친 아이들은 두근두근하며 바에 다녀왔다. 친구는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술에 대한 이야기와 분류 등을 설명해 주었다. 1온스씩 따라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1/3 또는 1/2잔씩 내어 주어서 아이들이 다양하게 맛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새로운 경험에 신난 아이들은 바가 있는 광안리에서 해운대까지 걸어오느라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각자가 좋다고 느낀 주류가 다르고, 취기를 느끼는 용량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지역 학교에 가서 모임에 빠진 친구가 원해서 한번 더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가 지낼 집을 구하러 일본에 갔을 때, 생활용품들을 사서 집을 채워넣다가, 동네의 리커샵에도 갔었다. 곳곳에 리커샵이 있고, 가게마다 주력 상품이 있다. 한 곳은 특이한 주류가 많은 곳이었는데, 아이의 생일선물로 아이의 눈길이 머무는 술을 한 병 사주었다. 아이의 생일이 봄인데, 잉어가 그려진 '입춘'이란 술이다. 생일날 혼자 개봉식을 하며 기뻐하던 아이는 용돈을 아껴 술을 모으기 시작했다. 밤에 한 잔씩 골라마시는 재미를 느끼며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간다. 많이 마시지 않고, 본인이 제어할 수 있는 만큼, 좋아하는 것을 골라 마실 수 있는 것. 하나씩 찾다 보니 큰아이의 술 취향은 나와 닮은 점이 많다. 엄마가 금주라 함께 마시지 못해서 아쉬워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엄마가 좀 더 건강해지면 같이 마시면 되지. 아이의 친구들도 각자 본인의 개성과 취향을 찾고 있나 보다. 서로 이야기하며 허튼짓을 한다고 웃기도 하고, 누구누구와는 정말 잘 맞는다며 기뻐하기도 한다.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의 친구들이 아이집으로 가서 지내기로 했다. 모아놓은 아이의 컬렉션이 싹 비워질지도 모르겠다.